예산 없는 부총리, 총리실 간 기획처…반쪽 경제사령부 시험대

[2026 경제]재경부·기획처 '반쪽 개편'에 정책 컨트롤 약화 우려
기획처, 총리실 산하에 예산 정치화 우려도…초대 장관 역할 주목

기획재정부 전경 (기획재정부 제공) 2020.11.23/뉴스1

(세종=뉴스1) 임용우 기자 = 거시경제 전반을 총괄해 온 거대 부처 '기획재정부'가 18년 만에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정부의 경제정책과 예산 편성 권한을 동시에 거머쥐고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기재부가 쪼개지면서, 정책 조정력 약화와 예산 기능의 정치화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특히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가 예산이라는 핵심 정 수단을 잃은 채 조정 기능만 맡게 되면서, 과거 재경부-예산처 체제의 한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처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배속되면서 예산 편성 과정에 청와대의 직접 개입 가능성도 커졌다는 평가다.

더욱이 재경부는 당초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까지 넘겨받아 실물과 금융을 아우르는 '경제사령부'로 거듭날 예정이었지만, 이 구상마저 무산되면서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정책 컨트롤타워로 출범하게 됐다. 이에 따라 초대 장관의 정무적 조율 능력이 새 조직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 News1 임세영 기자
재경부·기획처 공식 출범…예산 없는 '경제사령부'의 한계

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에서 분리된 재경부와 기획처가 지난 2일 공식 출범했다.

재경부는 경제정책의 총괄·조정, 세제 및 국고 행정을 담당하는 정책 컨트롤타워 부처로서 기존 기재부의 거시경제 정책 기능을 이어받았다. 재경부 장관은 경제부총리를 겸임하며 2차관·7실장 체제로 재편됐다. 혁신성장실과 국고실이 신설되며 총 28개 국, 90개 과가 자리했다. 직원 규모는 장·차관을 포함해 총 777명이다.

기획처는 1차관·3실장 체제로 미래전략기획실이 신설됐다. 또 재정성과국과 지출혁신과 등을 신설하는 등 총 15국, 53개 과로 편성됐다. 장·차관을 포함한 인원은 총 436명 규모다.

정부는 재경부에 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조정' 기능을, 기획처에는 중장기 미래 전략과 재정 운영을 설계하는 '기획' 기능을 각각 부여했다. 그러나 예산 편성 권한이 기획처로 분리되면서 재경부의 조정 기능은 기재부 시절만큼의 실질적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정부는 경제부처 개편 과정에서 금융위원회까지 포함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예고했다. 금융위를 해체해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경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원과 통합한 금융감독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여야 모두 금융 조직 개편에 반대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 금융정책까지 아우르는 ‘경제사령부’ 구상이 좌초되면서, 부총리급 부처로서 재경부의 정책 조정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국회입법조사처도 과거 사례를 들어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7월 '경제부처 조직개편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과거 재경부-예산처 체제에서는 재경부의 정책 조율 능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예산 기능을 분리할 경우 같은 문제가 재현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기술의 등장으로 정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정책 컨트롤타워의 조정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부처의 한 국장급 직원은 "재경부가 부총리 조직으로 남아 있지만 과거와 같은 정책 조율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재부가 경제 정책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은 예산 기능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세제 외에는 정책을 실질적으로 좌우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기재부 한 과장급 공무원도 "기재부 분리가 결정된 시점부터 정책 조정 능력은 이미 약화되고 있다"며 "타 부처와 업무 관련 논의를 할 때 협조가 아니라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권한이 재경부와 기획처로 분산되면서 부처 간 이견이 발생할 경우 청와대가 직접 조율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부처 간 정책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재경부 장관과 기획처 장관, 금융위원장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가동할 계획이다. 협의체를 통해 정책 방향과 정책 수단을 조율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정책 조율 약화 우려에 대해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염려하지 않도록 잘 운영하고 그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 News1 오대일 기자
예산권 사실상 청와대로…정부 살림 '정치화' 우려

기획처가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되면서 예산 편성 준비 단계부터 정치권과 청와대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재부 출범 이전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 정책실·경제수석실·국정기획수석실 등이 예산 편성 과정에 관여한 전례가 있다. 기획처가 예산뿐 아니라 중장기 국가 전략을 설계하는 부처라는 점에서 독립 부처로 남았어야 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장기 국가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부처를 국무총리실에 둔 것은 예산 기능을 격하시켜 상부의 명령에 따른 출납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인상을 준다"며 "총리실 산하가 아니라 독립 부처 체제로 개편해 자율성을 보장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국무총리 산하에 예산 조직을 두는 구조에서 예산이 미래를 위해 쓰일지 의문"이라며 "이 같은 정부 조직 개편이 장기적으로 경제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판단이 예산 편성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포퓰리즘으로 이어져 재정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사용돼야 할 예산이 정치적 셈법에 따라 선심성 사업으로 배분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처 초대 장관은 확대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재정 혁신을 병행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기획처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 후보자는 그동안 정부의 비효율적 지출을 강도 높게 지적해 온 인물로, 정치적 요구와 재정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조율자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획처가 총리실 산하로 편제되면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새 장관 후보자의 재정 운용 기조에 따라 국가 부채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새로운 기획처 장관은 확장재정과 재정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phlox@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