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1㎜의 승부…한국의 '제조 DNA' 피지컬AI 경쟁력"

[피지컬AI, 한강의 기적2.0]⑫ 골드버그 교수 "승부는 정밀도…韓 '미세공정' 핵심자산"
"휴머노이드 환상 넘어 실용화에 집중…10년 내다보는 장기투자가 관건"

편집자주 ...피지컬 AI. 인공지능 로봇을 포함해 움직이는 AI를 뜻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피지컬 AI가 산업·생활 전반에 투입돼 경제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자동화 공장부터 신약개발, 건설 등 활용범위에 한계가 없다. 경부 고속도로가 한강의 기적을 일궜듯 일하는 AI는 인구절벽·생산성 저하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유력한 해법이다. 제조업(몸체)·반도체(두뇌)·통신(신경망) 삼박자를 갖춘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2.0' 성공 공식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살펴본다.

켄 골드버그 UC버클리 산업공학과 교수 겸 AI 연구소 위원장 (본인 제공)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로봇은 1㎜의 물리적 한계와 싸워야 한다. 그 승부는 정밀도에서 갈리며, 오차를 허용치 않는 한국 제조업의 집요함이 바로 피지컬 AI의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다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둔화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피지컬 AI(Physical AI)'가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로봇·자동화 분야 권위자인 켄 골드버그(Ken Goldberg)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최근 뉴스1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이 제조업 전반에서 쌓아온 로봇 활용 경험과 정밀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시대를 선도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기술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 성과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성급한 투자 기조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드버그 교수는 AI와 로보틱스 융합 연구의 선구자로, 산업·물류·의료·서비스 로봇 전반의 상용화 가능성을 연구해 왔다. 또한 UC버클리에서 차세대 로봇 연구자와 창업가를 양성하고, 로봇 자동화 스타트업 앰비로보틱스와 자코비 로보틱스의 공동 창업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산업 AI 엑스포'에서 AI 스타트업 클레비가 인간 동작을 학습하는 피지컬 AI를 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2025.9.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1㎜의 오차가 성패 가른다…피지컬 AI, 데이터 확보와 정교함이 관건"

골드버그 교수가 꼽은 피지컬 AI의 가장 큰 난제는 '데이터의 비대칭성'이다. 웹상에 축적된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학습하는 언어·시각 AI와 달리, 로봇이 물리적 공간에서 사물을 조작하며 얻는 행동 데이터는 수집 자체가 어렵고 양적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로봇은 1㎜의 물리적 한계와 싸워야 한다"며 "로봇의 움직임과 조작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을 만큼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에 구현하는 시뮬레이션 기술 역시 만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골드버그 교수는 "중력이나 이동, 보행 같은 거친 동작은 시뮬레이션으로 잘 모델링할 수 있지만, 마찰이나 손끝의 미세한 변형처럼 정밀 조작 영역은 여전히 어렵다"며 "성공과 실패가 단 1㎜의 오차로 갈리는 분야는 오랫동안 연구돼 왔지만 여전히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피지컬 AI를 둘러싼 낙관론에 대해서는 냉정한 시각을 유지했다. 그는 "피지컬 AI가 가져올 산업적 파급력과 대중의 열광은 이해하지만, 이것이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은 아니다(It’s not around the corner)"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켄 골드버그 UC버클리 산업공학과 교수 겸 AI 연구소 위원장(64)이 뉴스1과 화상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5.12.23/뉴스1 ⓒ News1 심서현 기자
"휴머노이드 환상 버려야…실용적 자동화가 생산성 끌어올려"

골드버그 교수는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과열된 기대와, 이미 산업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실용적 로봇 기술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봇은 이미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반드시 인간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며 "특정 목적에 특화된 로봇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며 "두 기업은 조립 분야의 글로벌 리더지만, 전선 배치나 섬세한 부품 결합, 마감 공정 등은 여전히 인간 노동자가 핵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로봇 역시 노인 모니터링이나 고도화된 청소기 등은 비교적 빠르게 상용화될 수 있지만, 식사 준비나 옷 입히기 같은 복합적 간병 업무는 당분간 현실적이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인간이 가장 적합한 노동자라는 점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도봉구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에 전시된 수술로봇. 2025.8.29/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한국의 '제조 DNA', 피지컬 AI 시대 핵심 자산"

그럼에도 골드버그 교수가 한국을 피지컬 AI 시대의 유력한 주자로 꼽은 이유는 한국 고유의 제조 경쟁력에 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인프라와 초고속 통신망, 디자인 역량뿐 아니라 잘 설계된 제품을 정밀하게 구현해 내는 성숙한 제조 철학을 갖추고 있다"며 "피지컬 AI의 핵심 요소인 정밀도와 신뢰성 측면에서 한국의 제조 경험은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수년 뒤 로보틱스 분야에서도 한국이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 광명 EVO plant 생산 라인. (기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4.1/뉴스1
"닷컴 버블 교훈 잊지 말아야…투자는 길게, 기대는 낮게"

마지막으로 그는 AI 산업 전반의 거품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닷컴 버블 때처럼 기술 성과에 대한 기대가 과도해지면 실망과 함께 투자 위축이 뒤따를 수 있다"며 "이러한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버그 교수는 "현재 시장 참여자들은 정확성, 견고성, 신뢰성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피지컬 AI는 10~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사회를 바꿀 기술인 만큼, 단기 성과가 아닌 미래를 위한 긴 호흡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한국이 조급증이라는 함정만 피할 수 있다면, 피지컬 AI 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eohyun.sh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