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충격에도 韓수출 역대 최대…7000억 달러 눈앞[2025경제결산]⓸

전방위 타격은 피해…관세 영향 일부 품목에 그쳐
'관세 뉴노멀' 대응 과제…정부, 수출 체질 전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강경화 주미대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미 대통령 집무실)에서 신임장 제정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주미대사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12.19.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올해 한국 수출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관세 강화와 미·중 갈등 심화, 고물가·고환율·고금리라는 복합 악재 속에서도 역대 최대인 7000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는 성과를 냈다. 반도체·IT·조선 등 주력 산업이 수출을 지탱하며 위기 국면에서도 성장 동력을 유지했다는 평가다.

15% 관세 적용으로 타격을 받은 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 내 생산 확대와 물량 조절,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충격을 흡수했다.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이 수출 감소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화로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되면서 관세·비관세 장벽은 상시적 위험 요인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에 한국은 특정 품목과 국가에 편중된 수출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과제가 다시 한번 부각됐다.

연초 불어닥친 관세 폭풍…상호관세·車 15%로 인하, 관세는 '뉴노멀'

미국발 관세 압박은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시작과 함께 1년 내내 글로벌 교역 환경을 흔들었다. 한국 역시 관세 충격의 영향을 받았지만, 수출 전반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지며 관세 영향이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 일부 대미 수출 품목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한 640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 실적이다. 연말까지 598억 달러를 추가로 달성할 경우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7000억 달러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산업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은 올해 한국 수출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반도체 수출과 시장 다변화 전략이 미국발 관세 리스크를 상당 부분 상쇄했다.

반면 대미 수출은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5.0% 감소했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는 8개월 연속 감소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11월 1일부터 자동차 관세가 25%에서 15%로 조정돼 향후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한국에 대해 국가별 상호관세 25%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한국이 3500억 달러(약 512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상호관세율은 15%로 낮아졌다.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역시 당초 25%에서 15%로 인하됐다.

그럼에도 관세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중장기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4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내용이 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관보에 게재됐다. 이 관보는 현지시간으로 4일 공식 게재돼 발효되며 인하 조치는 2025년 11월 1일 이후 수입 건부터 소급 적용된다. 2025.12.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韓 수출 양대 축 자동차, 관세 직격탄에도 생산 조절·공급망 다변화로 위기 돌파

미국발 관세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난 산업은 자동차다. 완성차 업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25% 고율 관세로 상당한 부담을 떠안았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대미 수출 물량은 약 100만 대로, 전체 판매량(723만 대)의 14%를 차지한다.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해 15% 수준으로의 관세 인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북미 시장에서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구조적 한계 속에서 관세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해야 했다. 올해 2분기 기준 현대차는 8280억 원, 기아는 7860억 원의 관세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15% 관세 적용이 확정되면서 부담은 다소 완화됐다.

완성차 업계는 관세 인하에 안주하지 않고, 생산지 이전과 생산 능력 조절,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대미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춘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고율 관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복수 생산 거점을 활용하고, 유통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유럽·인도·중동 등 비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계획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산업통상부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17/뉴스1
급변하는 통상환경…'수출 품목·시장 다변화'로 체질 개선

정부는 제2·제3의 반도체로 성장할 수 있는 주력 수출 품목을 육성하고, 수출 시장 다변화를 통해 특정 국가·품목에 집중된 수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K-산업 방파제' 구축 계획을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는 관세 협상 이후 비관세 장벽 관리와 공급망 리스크 완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와 비자 공동작업반을 활용해 원산지 검증과 비자 관련 애로 등 수출·투자 장애 요인을 해소하고, 중국과는 공급망 핫라인 구축과 서비스·투자 FTA 협상을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유럽연합(EU)·아세안과는 공급망·디지털·기후 등 신통상 이슈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적극 검토한다.

수출 품목 다변화 역시 핵심 과제다. 원전 분야는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을 양축으로 수출 모델과 시장을 확대하고, K-푸드·화장품 등 한류 연계 소비재 수출은 2030년까지 700억 달러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방산·플랜트·전력기자재 수출에는 맞춤형 금융을 지원하고, 해외 기술 규제 정보 시스템과 무역 AI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다.

경제안보 강화를 위해 한국판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공세적 통상 대응에 나서는 한편, 소재·부품·장비 분야 '슈퍼 을(乙)' 기업 육성, 희토류 등 핵심 자원 공급망 안정화, 기술 유출 차단 등 불공정 무역 대응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김 장관은 업무보고 직후 브리핑에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수출 7000억 달러 이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수출과 통상 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