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계엄 1년] 흔들린 한국 경제…성장률 2%→0.9% '반토막'

계엄·정치 혼란과 美관세에 소비·금융시장 출렁…성장률 0%대 추락
정부 확장정책에 내수 턴어라운드…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성장회복 모색

계엄 사태 후인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의 증시 종가 표시. 2024.12.5/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한국 역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단 6시간 만에 국회 요구로 종료됐지만, 정치적 혼란은 사회와 경제 곳곳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들면서 내수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금융·증권 시장도 출렁였고, 기업들의 투자와 의사결정은 지연됐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까지 겹치면서, 올해 한국 경제는 1% 성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계엄에 움츠린 내수…장밋빛 2% 성장률 물거품

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계엄 사태 직전인 지난해 11월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9~2.3% 수준으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해 7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각각 2.2%, 2.3%로 전망했다. 이후 11월과 12월 성장률을 하향했지만, 각각 2.0%로 조정하는 정도였다.

국내 기관도 비슷했다. 지난해 중반부터 트럼프발 관세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은 11월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각각 2.0%, 1.9%로 예상했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예상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2%였다.

그러나 12월 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충격파가 경제까지 미치면서 실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소비 심리 위축은 정점에 달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치(100)를 상회하며 회복세를 보이던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2월 계엄 사태 이후 90선 아래로 급락했다.

민간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12월, 전년 대비 2.2% 줄어 신용카드 대란 사태가 있었던 2003년(-3.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이에 한은은 올해 1월 보고서를 통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6~1.7%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실제 1분기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0.2%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계엄 사태에 금융·증권 시장 타격…대외신인도 영향

계엄 사태는 금융·증권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3 계엄 사태 후 처음 증시가 열렸던 12월 4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코스피 지수는 2.33%(58.18p) 하락했다.

비상계엄 발표 전이던 3일 종가 기준 2500.10에 이르렀던 코스피 지수는 1월 3일 2441.92까지 내려앉았다.

지난해 12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 투자자금은 38억6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12월 평균 환율인 1434.4원으로 계산하면 5조 6000억 원 규모가 빠져나간 셈이다.

계엄 다음날인 12월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한 때 주간 거래 종가 1402.9원 대비 43.6원 오른 1446.5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 2009년 3월 15일(1488.0원) 이후 15년 8개월여 만에 최고치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엄은 대외 신인도에도 일시적인 영향을 줬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이 불안하다'는 인식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는 모습. 2025.11.1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美 관세 정책에 휘청인 韓 경제…회복 국면 가속해야

여기에 올해 1월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의 관세 정책을 예고함에 따라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특히 올해 4월 윤 전 대통령의 탄핵 후 6월 새 정부 출범까지 약 2개월간 공백기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의사 결정이 중단된 것도 문제였다. 미국의 관세 공세에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던 셈이다.

이에 한은과 KDI는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낮춰 잡았다. IMF와 OECD도 각각 4월과 6월 성장률을 1.0%로 하향했다. ADB는 4월 당시 1.5%를 제시했으나, 이후 7월 수정 전망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결국 지난해 말 2% 내외였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계엄과 미국 관세 정책 충격에 따라 1% 내외로 1.0%포인트(p) 가량 하락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우리 경제가 1% 정도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계엄과 탄핵으로 4~5개월이 소멸된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31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투입했다. 지난 8월에는 내년 예산안을 올해 본예산(약 673조 원) 대비 8.1%(약 55조 원) 늘린 728조 원으로 편성했다. 확장 재정정책으로 본격 전환한 셈이다.

주요 기관은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상향하기 시작했다. 한은은 지난 27일 발표한 '11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1.6%) 대비 0.2%p 상향 조정한 1.8%로 제시했다. 이는 KDI와 IMF 전망치와 같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수 회복과 신산업 발굴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의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끝나기 전 대안을 찾지 못하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 교수는 "반도체가 꺼지면 이후 대책은 무엇인지 앞서 고민하며, 산업 구조를 개편하고 신성장 산업을 육성해 수출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반도체가 앞에서 끌고 있으니,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평균의 함정'일 수 있다"며 "반도체는 고용 효과가 크지 않고, 소수의 대기업 중심이며, 훈풍이 내수까지 전달되는 효과가 굉장히 제한적이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진단했다.

이어 "주식 시장에서 시가총액의 30%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뜨겁지만,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하락한 종목이 1000여 개에 달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구조적 어려움을 겪는 산업과 가능성이 있는 산업을 점검하고, 이를 활용해 전반적으로 평균을 끌어올리는 한 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r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