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공정위 '금산분리 완화' 온도 차…"검토 가능"vs"신중해야"

공정위원장 "민원성 요구로 40년 규제 못 바꿔"
기재부·정치권은 '전향적 검토' 기류…찬반 팽팽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공정위의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2025.11.23/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세종=뉴스1) 이강 전민 심서현 기자 = 조(兆) 단위 투자가 필요한 신산업 육성을 앞두고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간 온도 차가 감지된다.

기재부는 '필요시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논의에 나설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둔 반면, 공정위는 '기업은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주병기 "민원성 요구로 40년 규제 못 바꿔"…대기업 투자 확장 경계

먼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의 금산분리 완화 요구를 공개 비판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일종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어 상당히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최 회장은 국민의힘과 한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국제 무대에서 게임의 룰과 상식이 모두 바뀌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조 단위 달러를 투자하는 것도 기업 단독 자금이 아니라, 펀드를 구성하고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라며 금산분리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주 위원장은 이어 "30년, 50년, 서구에서는 100년 된 규제를 개별 사안이나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고 밝히며, 규제 완화를 단순한 현안 대응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또 국내 대기업들이 제조업 본업보다 벤처투자 등 확장에 과도하게 기울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건 주력 기업들이 자기 본업에 충실한 것"이라며,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손정의'(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여기저기 투자를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제조업은 본업에 충실해야 하며, 손 회장처럼 이미 큰 기업들에 투자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재계 규제가 성장을 막아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SK하이닉스나 삼성 반도체 등 모든 기업이 현재의 규제 체제 속에서 기술 성장을 거듭했다"며 "공정거래법에 따른 경제적 강자에 대한 견제력이 있었기에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장을 짓는데 다른 대안이 있다면 왜 굳이 규제를 바꾸려 하느냐"며 "금산분리 완화는 정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생각해야 할 카드"라고 입장을 밝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감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1.19/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구윤철 "AI·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 위해 금산분리 완화 논의 가능"

반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완화 가능성에 '조건부 열림' 메시지를 내놨다. 구 부총리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신산업의 대규모 투자 수요를 거론하며 필요시 관련 논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계 요구와 관련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엄중한 환경 속에서 (규제 완화를) 안 한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선(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구 부총리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신산업 분야 투자를 우선 지원하겠지만, 그래도 자금이 부족해 대규모 자본 조달이 꼭 필요하다면 금산분리의 근본적인 정신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에 대해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며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좀 열어놓고 봐야 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결론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당장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부작용을 막을 수 있고 국가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면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검토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날 그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장기 투자자 세제 혜택 도입 의지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정치권은 '전향적 검토' 기류…전문가 "글로벌 스탠다드 아냐"

정치권 기류도 기재부 견해에 더 힘을 싣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금산분리 규제가 신산업 경쟁력에 제약이 되는 부분에 대해 '전향적 검토' 기조를 내비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만나 "독점 폐해를 방지할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범위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오픈AI·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미국의 초대형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파트너십 투자 의향서(LOI)를 체결한 직후 나온 발언이다. 반도체 설비 투자와 스타게이트 지분 참여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산업·금융 간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의 사모펀드 운용사 지배 금지를 일부 완화하고, 해당 운용사가 사모펀드의 무한책임사원(GP)으로 참여해 외부 투자자(LP)로부터 대규모 반도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거론 중이다. 대규모 반도체·AI 투자를 위한 자본조달 통로를 열어주자는 구상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산분리는 여태 자본조달의 병목이 되는 측면이 있다. 시대가 변했는데 이 규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산분리는 1980년대 재벌의 금융업 진출이 급증하던 시기, 사금고화를 막고 산업자본의 부실이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1982년 은행법 개정 과정에서 본격 도입된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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