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금산분리 완화' 논의 급부상…정부, 부분적 완화 시사
구윤철 "근본 정신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논의할 수 있어"
전문가 "금산분리, 신사업 자본조달 병목…국가경쟁력에 도움 의문"
-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43년간 유지돼 온 금산분리 규제 완화 논의가 다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랐다.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전기차 등 초대형 신산업이 조 단위 투자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산업과 금융을 엄격히 분리하는 기존 규제가 투자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면 금산분리의 근본적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계부처와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가 제기한 금산분리 완화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을 연 것이다.
구 부총리는 이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엄중한 환경 속에서 규제를 무조건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선(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 언급을 자제해 온 점을 감안하면, 정책지형이 '열어놓고 검토할 수 있는 국면'으로 전환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산분리(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금융기관 지분을 일정 기준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제한) 규제는 1980년대 재벌들의 금융업 진출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기업이 금융사를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고, 산업자본 부실이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1982년 은행법 개정 과정에서 금산분리가 본격 도입됐다.
그러나 최근 논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AI·반도체·바이오·전기차 등 신산업 분야가 조 단위 투자를 요구하면서, 산업과 금융을 칼같이 나누는 규제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졌다.
압축 성장 중심의 산업 생태계가 글로벌 자본의 속도와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현행 규제가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핵심 조항인 '일반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 금지'는 산업·금융 경계를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규정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표준산업분류에 따라 금융업을 엄격히 구분하는 구조 탓에 산업자본은 금융 관련 투자를 사실상 전혀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국내 혁신 생태계가 외국자본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문제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산 분리가 여태 자본조달의 병목이 되는 측면이 있다. 시대가 변했는데 이 규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금산분리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고, 리스크가 있다면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동시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같은 날 국민의힘과의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국제 무대에서 게임의 룰과 상식이 모두 바뀌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조 단위 달러를 투자하는 것도 기업 단독 자금이 아니라, 펀드를 구성하고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이런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관련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며 금산분리 완화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구 부총리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신산업 분야 투자를 우선 지원하겠지만, 그래도 자금이 부족해 대규모 자본 조달이 꼭 필요하다면 금산분리의 근본적인 정신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에 대해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며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좀 열어놓고 봐야 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결론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즉각적인 규제 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구 부총리는 "당장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부작용을 막을 수 있고 국가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면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기류도 이전보다 열린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금산분리 규제가 신산업 경쟁력에 제약이 되는 부분에 대해 '전향적 검토' 기조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 교수는 "대통령이 이미 방향을 언급한 만큼 부총리가 논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자연스럽다"며 "금산분리는 고려할 만한 사안이고, 이번 기회에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정도에만 (규제 완화를) 허용한 기존 제도로는 대규모 자본 조달은 어렵다"면서 "말은 금산분리 완화라고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너무 추상적이고, 어느 범위를 말하는 건지 정부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산분리 완화 범위에 대해서는 "'재벌만 혜택 본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더 많은 경제 주체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금산분리 완화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thisriv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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