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제때 퇴출됐으면 GDP 0.4%↑…정화 마비가 성장 둔화 초래"
한은 "경제위기 후 성장 둔화, 금융지원 부족 아닌 '정화 기능' 마비 탓"
"수익성 악화가 투자 부진 불렀는데…팬데믹 기간 실제 퇴출 0.4% 불과"
- 전민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팬데믹 이후 수익성이 악화한 '퇴출 고위험기업'이 제때 정리되고 정상 기업으로 대체됐다면, 국내 투자가 2.8%, 국내총생산(GDP)이 0.4% 더 증가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1990년대 이후 이어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성장 둔화는 금융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한계기업이 퇴출당하지 못하는 '정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퇴출 고위험기업 비중은 3.8%에 달했으나, 실제 퇴출당한 기업 비중은 0.4%에 그쳤다.
한국은행은 12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경제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는가?'라는 제목의 'BOK 이슈노트'를 발표했다.
조사국 소속 이종웅 차장·부유신 과장·백창인 조사역이 발표한 보고서는 1990년대 이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등을 거치며 성장세가 둔화했으며, 이는 민간소비와 민간투자의 위축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한은 연구진은 특히 민간투자의 둔화가 '이력현상(hysteresis)'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력현상은 일시적 충격이 투자를 비롯한 경제 변수의 장기 경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위기 시 한계기업이 퇴출되는 '정화효과(cleansing-effect)'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업 역동성이 장기간 회복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기업 폐업률이 증가했지만, 한국은 폐업률이 거의 유지됐다. 팬데믹 시기에는 미국은 폐업률이 상승한 반면 한국은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진이 2200여개 외감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투자의 이력현상은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이후 상위 0.1% 소수 대기업의 투자는 추세를 유지했지만, 나머지 대다수 기업의 투자는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이러한 투자 부진은 금융제약보다는 주로 '수익성 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종웅 차장은 "회귀분석 결과 투자율 변화는 기업의 수익성 저하에 주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금융위기 이후 영업이익이 감소한 기업은 증가한 기업에 비해 장기적으로 투자, 연구개발(R&D), 고용 등에서 격차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실제 퇴출당한 기업의 재무적 특성을 바탕으로 '퇴출 고위험기업'을 식별했다.
2014~19년(금융위기 이후) 기간 표본 내 퇴출 고위험기업 비중은 약 3.8%였으나, 같은 기간 실제 퇴출당한 기업은 2.0%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팬데믹 이후(2022~24년)에는 고위험기업 비중은 3.8%로 비슷했지만, 실제 퇴출 비중은 0.4%로 더욱 낮아졌다.
연구진은 만약 2014~19년 중 이들 고위험기업이 산업 내 정상기업으로 대체됐다면, 해당 기간 국내 투자는 3.3%, GDP는 0.5%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팬데믹 이후 기간에는 투자가 2.8%, GDP가 0.4% 늘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이들 퇴출 고위험기업은 실제 퇴출당한 기업보다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은 더 나빴지만, 유동성 비율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들 기업이 유동성 지원 등을 통해 시장에 잔존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위기 이후 성장 둔화가 금융지원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차장은 "성장추세 둔화를 완화하기 위해 금융지원을 하더라도, 기업의 원활한 진입과 퇴출을 통해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나 혁신적인 초기 기업 등에 선별적·보조적으로 지원을 운용해야 한다"며 "개별 기업 보호보다는 산업 생태계 보호에 중점을 두고, 규제 완화를 통해 신산업 투자를 촉진해 미래 동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min785@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