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새 대안' 제시에…정부, 기재·산업 장관 동시 방미로 협상 속도전
외교장관 "美 대안 검토 중"…'제한적' 통화스와프 등 수용 가능성
'관세 협상 분수령' 경주 APEC 정상회의, 경제·통상라인 총력전
- 이정현 기자,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이강 기자 = 미국이 3500억 달러 대(對)미 투자 패키지 조성과 관련해 이견이 컸던 우리 정부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던 관세협상이 급진전될지 주목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제시한 대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3500억 달러 직접 투자 압박에 대응해 한국이 무제한 통화스와프와 합리적인 직접 투자 비중을 요구해온 상황에 비춰볼 때 제한적 통화스와프와 직접 투자 비중 일부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새로운 대안을 계기로 협상 시계는 다시 빨라지는 분위기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의 양자회담을, 김정관 산업장관도 이르면 이번 주말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협상을 위해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부는 한미 관세 후속 협상과 관련해 최근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대안'을 검토 중이다.
전날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자리에서 한미 관세 후속 협상 진척상황과 관련해 "미국 쪽에서 지금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왔다"라며 "지금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다만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대안이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대통령 대변인실도 입장을 내 "우리 측에서 금융패키지 관련 수정안을 9월에 제시한 바 있다"면서 "이에 대해 일정 부분 미 측의 반응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다만 "협상 중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지 못함을 양해바란다"고 밝혔다.
지난달 한국 정부는 미국에 '대미 투자 패키지 관련 양해각서(MOU) 수정안'을 보낸 바 있다.
이 수정안에는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의 투자처 선정 관여권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 측이 보낸 새로운 대안은 이 같은 수정안에 대한 회신 성격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제시한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아닌 '제한적' 규모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조건으로 미국이 협상 카드를 꺼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첫 번째로는 무제한 통화스와프보다는 600억 달러 규모 스와프 체결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전 선례가 있는 만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 간 통화 스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300억 달러)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600억 달러) 때 2차례 한시적으로 체결한 바 있다. 2008년 당시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며, 세계 금융시장 안정을 통한 자국 경제 보호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얻을 실익은 크지 않으며, 오히려 관세 협상에서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용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미국은 과거 수준의 '제한적' 통화스와프' 카드를 제시하며, 그에 상응하는 자국 이익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제안을 받더라도 큰 도움은 안 될 것"이라며 "1000억 달러를 체결한다고 해도 우리가 부담해야 할 3500억 달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미국이 '직접 투자' 비율을 다소 줄이고, '보증 비율'을 늘려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지난 7월 말 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협력 펀드 조성을 조건으로 자동차(25%→15%) 관세와 상호관세(25%→15%) 인하를 끌어냈다. 다만 당시 우리나라는 투자금 조성과 관련해 재정 부담이 큰 '직접 투자'는 5% 내외로 하되, 보증 방식을 통해 투자 금액을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이 지정한 분야에 3500억 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투자하라고 요구하면서 관세 후속 협상은 두 달 넘게 교착 상태에 빠졌다. 관세 협상 구두 타결 이후 미국이 줄곧 '직접 투자'만을 고수해온 만큼 보증 비율 조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견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굳이 꼽자면 제한적인 통화스와프 정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전면적인 체결은 아닐 거 같다"면서 "미국이 먼저 좋은 조건으로 '우리가 얼마 해줄게' 이렇게 나올 거 같진 않다"고 전망했다.
강 교수는 이어 "또 다른 카드로는 조선이나 반도체 같은 산업에서 약간의 '페이백(보상)'을 주는 정도를 예상할 수 있다"면서 "기존 관세를 철회하는 게 아니라, 우리 조선·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금액을 대미 투자협력금으로 포함해 계산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이 고수하는)5%의 직접 현금 출자 비율을 20~30%로 늘리고, 나머지 70%는 SPC(특수목적법인)가 빌릴 때 직접 보증을 서라는 방식의 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면서 "또 다른 안이라면 무제한 통화 스와프 대신, 지난번 한국과 체결한 600억 규모보다는 좀 더 늘린 800억 달러 통화 스와프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릴 APCE 정상회의는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한미 정상 간 관세 담판을 준비하는 양국 경제·통상라인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부터 18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구 부총리는 베선트 장관과 양자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로 회담 일정을 조율 중인 구 부총리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비롯해 그 연장선에서 추진 중인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의 현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구 부총리는 '15일에 미국에 가서 베선트 장관과 만나느냐'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이르면 이번 주말 재방미 일정을 추진 중이다.
한미 관세 후속 협의의 분수령이 될 경주 APEC 정상회의 전에 실무 차원에서 양국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목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달 말 두 정상 간 만남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장관급 협의에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정감사 등 국내 일정을 피하면 사실상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방미)횟수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남은 기간 미 측과도 일정이 조율되면 언제든지 만나 협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추석 연휴 전인 지난 4일에도 급거 뉴욕을 방문해 카운터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나 대미 투자 패키지 등 현안을 놓고 협의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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