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잿값 핑계로 가격 '쑥'…먹거리·예식업 탈세 55곳 세무조사

특수관계사 동원해 원가 부풀리고 오너 일가 사익편취
국세청 "사주 일가 자금출처·거래처 철저 검증…조세범칙행위 엄정 조치"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이 25일 세종시 정부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국세청 제공)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국세청이 원자잿값 상승 등을 핑계로 상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면서 세금을 탈루한 생활물가 밀접 업종 55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특수관계사를 동원해 원가를 부풀리거나, 현금 매출을 누락하는 방식으로 소득을 숨기고, 법인 명의로 고급 아파트나 고가 스포츠카, 요트 등을 구입해 사주 일가가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25일 가공식품 제조·판매, 농축수산물 납품·유통, 외식 프랜차이즈, 예식·장례 등 4대 생활물가 밀접 분야 55개 업체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최근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먹거리 물가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대비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가공식품(4.2%), 농축수산물(4.8%), 외식(3.1%) 등 먹거리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일제히 상승했다.

국세청은 이같은 상황에 편승해 일부 업체들이 상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면서 변칙적인 방법으로 탈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브리핑에서 "조사 대상 업체들은 실제 원재료값이나 인건비 상승분보다 더 많이 가격을 올렸다"며 "해당 원가 상승 요인에 허위 사실이 없는지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가공식품 제조·판매 업체 12곳, 농축수산물 납품·유통 업체 12곳,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14곳, 예식·장례 등 경조사 업체 17곳이 포함됐다.

(국세청 제공)

일례로 한 가공식품 제조·판매 업체는 사주 일가가 설립한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원재료를 고가에 사들이거나 허위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부풀렸다. 또한 사주 일가에게 직책에 맞지 않는 고액 급여를 주거나, 고가 아파트 구입비, 자택 인테리어 비용까지 회삿돈으로 대신 부담한 사례도 있었다.

다른 농축수산물 납품·유통 업체는 거짓 계산서를 주고받거나, 농어민과 직거래 시 증빙을 수수하지 않아도 되는 점을 악용해 무자료로 상품을 매입한 뒤 현금이나 차명계좌로 받은 판매대금을 신고 누락했다.

또한 한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는 사주 일가 소유의 특수관계법인을 거래 중간에 끼워 넣어 식자재를 고가에 매입한 뒤, 가맹점에는 더 비싼 값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중으로 이익을 챙겼다. 가맹비와 교육비, 인테리어 알선수수료 등은 현금으로 받아 매출 신고를 누락했다.

한 예식·장례 등 경조사 업체는 축의금·조의금으로 비용을 내는 점을 악용해 현금 결제를 유도해 매출을 숨겼다. 근무하지도 않은 가족에게 인건비를 지급하거나, 외주업체로부터 용역을 받은 것처럼 꾸며 비용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수법도 사용됐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원가 부풀리기, 불투명한 유통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검증할 방침이다.

법인자금 유출, 가공인건비 지급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주 일가에 대해서는 재산 취득 자금의 출처를 살펴보고, 탈세를 도운 거래처에 대해서도 조사를 확대한다.

민 국장은 "이번 조사 대상 55개 업체의 전체 탈루 혐의 금액은 8000억 원 규모"라며 "무자료 거래,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차명계좌 사용 등 세법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시보관, 금융추적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조사 과정에서 조세포탈 등 범칙 행위가 확인되면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하는 등 엄정히 조치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원자잿값 상승 등을 핑계로 과도하게 가격을 인상하고 탈세하는 업체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세무검증을 실시할 것"이라며 "민생침해 탈세 근절과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