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인천해양박물관, 9월 이달의 해양유물로 '제항승람' 선정

1624년 대명 해로사행의 노정을 그린 기록화

제항승람(국립인천해양박물관 제공)

(서울=뉴스1) 백승철 기자 = 국립인천해양박물관(관장 우동식)은 9월 이달의 해양유물로 1624년(인조 2년) 대명(對明) 해로사행(海路使行)의 노정을 그린 기록화 '제항승람(梯航勝覽)'을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 자료는 정사(正使) 이덕형(李德泂, 1566~1645)과 부사(副使) 오숙(吳䎘, 1592~1634), 서장관(書狀官) 홍익한(洪翼漢, 1586~1637)의 1624년 대명 해로사행 현장을 그린 기록화이다. 당대 한·중교류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금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해양교류의 사례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조선의 대중국사행은 대개 육로를 통해 이뤄졌으나, 17세기 후금(後金)이 요동 지역을 점령하면서, 육로 이용이 불가능해지자 그 대안으로 바닷길을 이용한 사행이 이뤄졌다. 해로사행길은 현재 북한 의주(義州) 지역의 선사포(仙槎浦)에서 출항해 여러 섬들을 지나 산동반도에 있는 등주(登州)에서 하선한 뒤, 다시 육로를 활용해 북경으로 향했다. 이처럼 바닷길을 이용한 사행은 1621년부터 대명외교가 단절되는 1637년까지 총 40회 이뤄졌다.

17세기 초반은 인조반정으로 인한 광해군의 폐위와 후금의 요동점령 등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은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인조의 책봉을 받기 위해 1624년 이덕형을 필두로 사절단을 파견했다. 사절단은 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뒤, 그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화첩을 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해로사행기록화다.

해로사행기록화는 국가의 공식 편찬 기록물이 아니라 사행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했다. 제작 목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험난한 여정을 함께한 사절단의 우의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정사 이덕형 등 3명은 험난한 해로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생사고락을 함께한 우의를 기리기 위해 해로사행기록화 3본을 제작해 각각 한 본 씩 소장했다. 둘째, 다음 해로사행에 나설 사신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항로의 섬과 항해 중 목격한 기이한 기상현상, 해양생물들을 그려넣어 해로사행길의 정보를 담았다.

이번에 선정된 '제항승람'은 2권의 화첩으로, 해로사행의 출발부터 중국 북경 도착, 그리고 귀국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으며 총 25폭의 그림과 서문, 발문이 실려있다. 그림의 구성과 내용은 기존에 알려진 다른 해로사행기록화와 비슷하지만 이 자료는 지금까지 공개된 해로사행기록화와 다른 판본이라는 점, 그리고 서·발문이 온전히 전하는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제항승람' 중 해상로를 그린 부분은 총 5폭으로 현재 북한 의주 지방에서 산동반도에 이르는 해상경로(선사포(仙槎浦)-가도(椵島)-석성도(石城島)-여순구(旅順口)-등주외성(登州外成))가 표현돼 있다. 1폭은 선사포에서 사행길에 오르는 사신단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2폭부터 4폭까지는 가도, 석성도, 여순구 경로의 섬과, 사신단이 만난 기상현상과 고래 등이 그려져 있다. 5폭은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중국 등주에 도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제항승람'은 당시 해로사행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동식 국립인천해양박물관장은 "'제항승람'은 명청교체기 육로사행의 대안으로 시작된 해로사행의 실체를 보여주는 기록화로, 제작 동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서발문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유물의 가치가 크다"며 "앞으로도 해양교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을 적극 수집하여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수도권 유일의 해양박물관으로, 해양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해양 관련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 '제항승람'은 2026년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2027년에 선보일 예정이며, 당시의 해로사행을 시각화한 영상은 국립인천해양박물관 1층 실감영상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bsc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