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관세 15% '명문화' 불발에…한미, 실무협상 '진통' 예고

韓, 차 관세 15% 명문화 요구…美, 3500억불 투자 구체화 맞불
협상안 명문화 미루는 美…"韓 압박 카드 유지하려는 의도" 해석도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한미 정상회담이 무난하게 마무리됐으나, 이번 회담에서 정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관세 협상의 주요 내용이 양국 간 입장 차로 명문화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은 기존에 합의한 자동차 품목관세 15% 명문화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의 구체적인 투자처를 함께 명시해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져 향후 진행될 양국 간 후속 실무협상에서 팽팽한 기싸움이 예상된다.

차 관세 15% 명문화 요구…美, 3500억달러 대미 투자 구체화 '이견'

28일 통상당국 등에 따르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지난달 30일 체결한 관세 협상의 주요 내용을 명문화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자동차 관세 15%, 3500억 달러 투자 구체화' 등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 요약문(팩트시트) 발표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협상에서 지난달 30일 관세 협상 때 합의한 대로 한국산 자동차 품목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춘다는 내용을 팩트시트에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양국 간 관세 협상 합의가 이뤄진지 한 달이 다 됐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매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협상과 관련한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요구에 미국은 한국 정부가 약속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함께 담자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 '투자 펀드의 90%가 현금이 아닌 대출·보증을 통해 이뤄진다'는 보도가 나와 미국 내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은 투자 대상과 이익 배분, 책임 소재 등에서 한국에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고, '협의가 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깰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고 한다.

실제 3500억달러 대미 투자액 운용 방식에 대한 양국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한국은 대출이나 보증 등의 방식을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지분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25일 워싱턴DC에서 기자단과 만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미 투자협력 펀드'와 관련 "조선, 에너지, 핵심광물, 배터리, 반도체, 의약품, 인공지능(AI) 퀀텀 컴퓨팅 등 전략 산업 강화를 지원하는 데 금융 패키지를 활용하기로 했다"며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로 금융 패키지 조성과 운영을 규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CNBC 방송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 등의 자금으로 국가경제안보기금을 창설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은 관세 협상에서 제외했던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등 농산물 추가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추후 논의에서 언제든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불씨가 남은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협상안 명문화 미루는 美…韓 압박할 의도?

미국이 명문화를 미루는 배경을 두고선 여러 관측이 제기된다. 가장 유력한 관측은 한국을 압박할 카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일부러 명문화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명문화를 늦추면서 한국의 투자 약속 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받아내려는 의도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통상 관련 세부 협상이 사실상 상시 체제로 전환된 만큼, 향후 협상 과정에서는 기존 합의안의 큰 틀을 유지하며 국익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단장은 "큰 틀의 장애물은 넘어선 것"이라며 "실무협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협상보다는 원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호호혜적이면서 균형을 만들 수 있는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앞으로 추가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통상 협상이 상시적인 체제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특별히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향후 있을 수 있는 추가 요구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향후 전개될 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후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시대의 통상 협상, 또 안보 협상의 뉴노멀은 계속 끊임없이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