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 아이"…출산율 반등 이끈 에코붐 30대 여성

90년대생 '에코붐 세대' 출산 주력층 진입…비혼출산도 역대최고
전문가들 "샴페인 아직 이르다…추세 전환 '골든타임' 잡아야"

지난해 출생아 수가 23만 8300명으로 전년 대비 8300명 늘면서 9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합계출산율 역시 0.75명으로 9년 만에 상승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차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2025.8.2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임용우 기자 = 1990년대 초반 출생한 2차 '에코붐 세대'(1991년~1996년)가 30대 출산 주력층으로 진입하고, 결혼을 전제하지 않는 '비혼 출산'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출생아가 9년 만에 반등세로 돌아섰다.

인구구조와 사회인식 변화가 맞물려 만들어낸 긍정적 신호로 해석되지만, 일각에선 이번 반등이 '통계적 착시'에 기댄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모처럼 찾아온 반등의 불씨를 추세적 전환의 기회로 살리기 위해선 정책적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는 23만 8300명으로 전년(23만명) 대비 8300명(3.6%) 증가했다. 출생아가 전년 대비 증가한 것은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이 같은 출생아 증가세는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출생아는 12만 600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만 7280명)보다 7.4%(8721명) 늘었다. 지난 6월 출생아는 1만 9953명으로 1년 전보다 9.4% 늘면서 12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결혼=출산' 공식 깬 90년대생…인식 변화가 이끈 '반등'

출산율 반등의 가장 큰 동력은 주 출산 연령에 진입한 30대 초반 '에코붐 세대'의 인구 증가 효과로 분석된다.

실제 연령별 출산율을 보면 30대 초반(30~34세) 여성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70.4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으며,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30대 후반(35~39세) 출산율 역시 7.0% 늘었다. 반면 20대 후반(25~29세) 출산율은 3.3%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비혼 출산·동거를 긍정적을 보는 사회적 인식 변화도 출생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는 1만 3800명으로 전년(1만 900명)보다 2900명 늘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출생아 증가분(8300명)의 34.9%에 달하는 수치로, 9년 만의 출생아 수 반등에 비혼 출산이 상당 부분 기여한 셈이다. 전체 출생아에서 비혼 출산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5.8%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1년 이래 역대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전통적 가족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고용·주거 문제로 결혼의 문턱이 높아지자 결혼을 거치지 않고 출산을 선택하는 청년층이 늘어난 결과로 분석한다.

출산의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의 증가 추세도 출생아 반등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증가한 혼인 건수가 올해 들어서도 증가세를 유지하며 향후에도 출생아 증가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혼인 건수는 11만 65건으로 전년보다 8.2% 늘며 지난해 4월부터 15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 중이다.

지난달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추계 웨덱스 웨딩 박람회에서 예비 부부들이 전시된 드레스를 살펴보고 있다. 2025.7.6/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진짜 위기는 여전…반짝 반등에 샴페인 터뜨리긴 일러"

전문가들은 혼인 건수 증가와 에코붐 세대의 인구 구조를 감안할 때, 출생아 수가 향후 2~3년 간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현재의 출생 지표 개선은 '통계적 착시'일 수 있으며, 추세적 전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율 반등은 에코 세대의 출산 적령기 진입, 코로나 시기 지연된 혼인의 기저효과, 합계출산율 계산에서 분모인 가임기 여성 인구 감소 등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인 경제·주거 등의 문제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출생 지표가 개선된 것은 통계적 착시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2022년 출산율이 워낙 큰 폭으로 떨어졌던 데 따른 기저효과와 90년대 초중반생 인구가 여전히 많다는 점, 최근 늘어난 혼인 건수가 아직 출산으로 다 이어지지 않은 여력 등이 남아있어 당분간 늘어날 여지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이 돼서 반등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인구 내부적인 요인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출생 지표가 반등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금을 '골든타임'으로 꼽으며 복지·고용·주거·교육 등 사회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 대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상황 개선 없이도 반등이 나타난 지금이 오히려 '골든타임'일 수 있다"며 "일시적 반등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고용과 주거를 연계해 결혼의 허들을 낮추고, 경쟁 위주의 교육 환경을 저성장·수축 사회에 맞게 재편하는 등 중장기적인 사회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연구원은 "정부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지금의 반등은 정책 효과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새 정부가 향후 5년간 인구 정책을 어떻게 설계할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