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최종 카드는 '쌀'…수십조 조선업 협력 곁들여 도장 찍는다

미국산 쌀 TRQ 물량 확대 저울질, 양곡법으로 반발 최소화
수십조 규모 조선업 협력안도 제시…베일 벗는 협상 카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EU에 대한 상호관세 및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한 무역 협상에 합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2025.07.27.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정부가 미국과의 막판 관세 협상 타결을 이끌기 위한 핵심 카드로 '쌀 수입 물량 일부 확대'까지 검토 중이다.

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미국의 압박을 현실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일부 늘리는 방안을 마지막 카드로 아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협력이 절실한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서는 국내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와, 정부에서 이를 뒷받침할 대출·보증 등 금융 지원을 포괄하는 패키지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쌀 수입 확대 불가피…TRQ 수입 물량↑, 양곡법으로 시장 충격 완화

2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25% 상호관세 부과 협상 카드로 미국산 쌀 저율관세 수입물량(쿼터, TRQ)을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산 쌀 수입 쿼터 확대에 따른 농민 반발은 정부가 시장에서 남는 쌀을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에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한 미 측의 거센 압박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5일 통상현안 긴급회의 후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도 포함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걱정했던 것보다 그 이상"이라며 "쌀 개방 요구를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계별로 양보 가능한 수준의 시나리오 몇 개를 갖고 미국과 협상 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TRQ 물량 확대가 가장 마지막 선택지가 될지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TRQ 물량 확대 및 양곡법 개정 시나리오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출발 때부터 가능성이 제기됐던 대안이다. 하지만 민감 품목인 쌀 시장 개방은 최대한 방어하면서 미국의 요구는 다른 협상 카드로 막아 보겠다는 전략에 따라 가능성을 애써 부인해 온 사안이다.

그러나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농산물 수입 개방 없이는 미국과의 협상 타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마지막 카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국은 현재 수입 쌀에 대해 51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되, 연간 약 41만톤의 수입 쌀에 한해서는 5%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중 미국에 할당된 물량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13만2000톤이다.

정부는 이 같은 TRQ 물량을 일부 늘려 미국에 할당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수입 쌀에 국가별 쿼터가 없는 일본의 경우 의무 수입 총량에서 미국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장 개방 확대 없이 미 측 요구를 맞췄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별 쿼터로 운영 중인 상황에서 수입 총량 확대 없이는 미국산 물량을 늘리기 어려운 탓에 부득이 일부 개방 확대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일부 시장 개방 확대로 인한 농업인 피해를 우려해 양곡법을 개정, 최대한 피해가 돌아가지 않게 한다는 구상이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 24일 여야 합의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나누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5/뉴스1
韓, 수십조 규모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 제안

통상당국은 단연 미국이 한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선 수십조 규모의 국내 민간 조선사의 대미 투자와 정부가 대출·보증 등으로 이를 금융 지원한다는 내용의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 Make_America_Great_Again)에 조선업'을 뜻하는 Shipbuilding을 합친 용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자택에서 이뤄진 협의 과정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접 프로젝트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 한국 민간 조선사들이 수백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할 것이고, 또 정부는 대출·보증 등을 통해 이를 지원할 것이라는 세부안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 러트닉 장관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한미 조선업 협력과 관련한 모델은 이미 구체화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최근 인수한 미국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를 거점으로 계열사인 한화해운 발주 선박을 공동 건조하고 있다. 이는 50년 만에 미국 조선소에 발주된 첫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으로, 현지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한화오션은 향후 LNG선, 친환경 선박 등 신성장 시장에서 현지 시너지 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HD현대는 미국 해양방산 1위 조선기업 헌팅턴 잉걸스와 건조 협력·공정혁신 지원 업무협약을 맺었다. 또 오프쇼어 선박(해양개발 등 특수목적 선박) 전문기업 에디슨 슈에스트와 미국형 컨테이너 운반선 건조도 추진 중이다. HD현대는 실제로 전문가를 미국 현지에 파견해 생산공정 컨설팅·기술 이전 협력을 제공하고, 내년까지 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현지 건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