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종로세무서 '첫 여성 서장' 이승신의 아름다운 퇴임

35년 공직생활 마치고 명예퇴직…세무사로 새출발
강민수 국세청장 "제2의 인생에서 훨씬 더 잘할 것"

지난달 26일 열린 이승신 전 종로세무서장의 퇴임식에서 정재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공로패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종로세무서 제공). 2025.7.3/뉴스1

(세종=뉴스1) 이철 기자

"저는 이승신 서장이 아니라 '내가 (종로세무서장 자리에) 사람을 참 잘 골라서 보냈구나'라며 저 자신을 칭찬했습니다. 우리 '승신이 누나'가 제2의 인생에서 훨씬 더 잘해 나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달 26일 열린 이승신 전 종로세무서장의 명예퇴임식 중간에는 한 편의 영상편지가 재생됐다. 영상의 주인공은 강민수 국세청장이었다.

당시 강 청장은 빙모상을 당해 장례식장을 지키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 영상을 촬영했다.

그는 "서장의 퇴임식에 국세청장이 참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지만, 저는 우리 '승신이 누나' 퇴임식은 꼭 가서 의미 있게 축하해드리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전 서장은 1990년 8급 경채(특채), 전산직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국세청 직원이 행정고시, 세무대 출신인 것을 고려하면 흔치 않은 사례다.

공직 생활을 시작한 후 이 전 서장은 국세청 정보분석시스템(TIMS), 전자세금계산서 시스템(e-세로), 차세대 국세행정통합시스템 등에 참여하며 국세청의 전산화에 기여했다.

특히 그가 2009년에 실무를 맡아 2010년에 개통한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시스템은 당시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받았다. 이 전 서장이 고안한 이 시스템은 특허로 등록돼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세금계산서를 모두 수기로 작성해 신고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국세청 직원 입장에서도 세무 행정에 굉장히 애를 먹었는데,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관련 업무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또 2011년부터 참여한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NTIS)에도 이 전 서장의 손길이 묻어 있다. 그는 초창기 예산 2300억 원을 확보하고 타 부서에서 업무를 하다가, 다시 복귀해 시스템의 개통 업무를 맡았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전 서장은 제천·도봉·종로세무서 등 일선 세무서장을 3번이나 역임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종로세무서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승신 전 서장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종로세무서 제공). 2025.7.3/뉴스1

특히 지난해 마지막 임지였던 종로세무서는 국세청 내부에서 '1번 세무서'로 불리는 상징적인 관서다. 1944년에 설립된 종로세무서에서 8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서장이 부임한 것이다. 당시 인사에서 이 전 서장을 제외한 서울시 내 모든 세무서장에 남성이 임명된 것을 보면, 이 전 서장의 임명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강 청장은 "저는 2016년 말에 국세청 본청 전산국장으로 가면서 당시 사무관 팀장이던 이 서장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며 "지난해 7월 서울청 1번지 세무서인 종로에 전산직으로는 최초로 이 서장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여자인 데다, 전산직인 이 서장이 할 수 있겠냐는 반대가 많았지만, 저는 '웃기지 말라.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낫다'며 그를 보냈다"며 "이후에 제가 받은 보고를 보면 그러한 우려는 완전히 불식됐다"고 호평했다.

35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이 전 서장은 오는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이승신 세무회계'를 열어 세무사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이 전 서장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납세자와의 신뢰를 지켜내는 일, 그리고 공정한 세정이 국민의 일상에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은 여전히 무겁고도 존엄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납세자와 국세청의 가운데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세정 협조 지원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ir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