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왜 金이 됐나]②농가는 부익부 빈익빈…"대출 갚기도 버거워"

"목돈은커녕 빚더미, 대농·유통업자만 이득"

지난해 9월 경남 밀양시 산내면 한 과수원에서 농민이 이상기후에 따른 탄저병과 냉해 등 피해를 입어 썩은 사과를 정리하고 있다. 기사내용과는 관계 없음. ⓒ News1 DB

(세종=뉴스1) 이정현 임용우 기자 = "사과 값 올라서 목돈 좀 만졌겠다 하는데…매년 대출 갚기도 버거운 형편입니다."

충북 음성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한 청년농부는 최근 '금(金)사과' 이슈에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 7일 오전 찾은 충북 음성의 한 사과재배 농가. 사과농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과 꽃 따기' 준비가 한창이었다. 봄내음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꽃이 피었지만, 이 꽃들을 솎아내야만 큰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소멸하고, 탄생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지고, 반대로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오르는 것은 시장의 기본 원리다.

최근 국내 사과 값이 폭등하면서 소위 '애플플레이션(애플+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치솟은 사과 값에 함박웃음을 예상했던 청년농부의 얼굴에는 어째서인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작년에는 수확을 아예 못한 농가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우리 농장도 생산이 30%가량 줄었는데, 비정형과 비율도 70%에 육박했다"고 사정을 털어놨다.

이어 "얼마 전 동네에서 은퇴하고 사과농사를 시작한 이웃은 작년에 수확을 아예 하지 못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을 정도"였다고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작황도 문제지만, 시세와는 상관없이 가격을 후려치는 중간 도매상에서의 행태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로컬푸드마켓에 사과를 넘기면 보통 kg당 6000~7000원 정도 받는다. 대형유통업체들은 터무니없이 싸게 구매하려고만 한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지금은 보통 공판장으로 많이 넘기는 추세"라며 "공판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kg당 9000원대는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가격은 서울이 가장 잘쳐주는데, 박스작업까지 다해서 넘겨야 하다보니 농민들한테는 안동으로 보내는 게 가장 인기가 많다"면서 "안동에 사과를 넘긴 적이 있는데, 상품 기준 20kg당 21만 원까지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사과 값은 치솟았지만, 지난해 수해 등으로 인한 작황 부진에 민간 대형유통업체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가격까지. 정작 영세한 농가에서는 소매가가 얼마나 오르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얘기했다.

그럼 '공판장에 직접 내다 팔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공판장)도매상들은 기존에 알고 있는 농민들의 상품만 제값 주고 사는데, 초보 농가들 상품은 사지도 않는다"며 "나도 처음에는 판로를 뚫으려고 헐값에 물량을 넘기기도 했다. 그만큼 농민에게는 판매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농가에 적용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대농들이나 유통업자들은 이번에 큰돈을 번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업형으로 농사를 짓는 대농들은 자체적으로 저장창고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이전에 비축해 둔 물량을 아직도 직접 판매하는 곳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렇게 농가에서 직접 판매하는 경우 중간 마진이 없으니 농가는 농가대로, 소비자들은 유통업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비용 등의 문제로 저장창고를 보유할 수 없는 영세 사과농가들은 수확기에 바로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탓에 중간 도매상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흥정할 수밖에 없어 소위 '목돈' 만지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에 장비, 인건비, 농약 값 등 투자비용만 5000만 원 조금 넘게 들었는데, 그나마도 사과 값이 안 올랐으면 적자였을 것"이라며 "여기에 사과농사는 기계화도 잘돼있지 않아 사람을 써야 하는데, 외국 인력을 하루 쓰는 비용만도 13만 원이다. 비용 소모가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국민들도 이런 사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