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절간에 '확성기' 단 이창용 총재…커진 존재감에 반동도
한은 총재 취임 만 1년…조용했던 한은寺에 새 바람
非 한은맨으로서 소통 강화…잡음·독립성 비판 존재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한국식 점도표, 포워드 가이던스, 창용신, 직설 화법, F4 회의, 2번의 빅 스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만 1년 동안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화제다. 굵직한 주제로만 추려도 한 손에 다 꼽지 못할 정도다.
존재감에 업무 능력까지 인정받은 그이지만, 마치 반동처럼 비판도 존재한다.
21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이날로 취임 1년을 맞았다.
이 총재는 정통 '한은맨'이 아닌 외부 출신으로서 보수적인 중앙은행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거란 기대를 안고 부임했다.
과거 서울대 교수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으로 일한 바 있다.
역대 총재들과 구분되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절간 같이 조용하고 존재감 없다는 이유로 붙은 '한은사(寺)' 꼬리표를 떼는 데 어느 수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요한 절간에 '확성기' 달아…포워드 가이던스 도입
이 총재는 이전 총재들이 중시한 '전략적 모호함'에서 탈피해 통화정책방향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있어서도 '직진 화법'을 선보였다.
한은이 과거 시도해 본 적 없었던 통화정책방향 사전 안내, 즉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를 도입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이 총재는 "당분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파격 발언을 내놨다. '물가가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한은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었던 구체적 숫자였다.
같은 해 11월부터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들의 최종금리 전망을 뚜렷이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석 달에 한 번 공개하는 점도표와 꼭 닮아 '한국식(K)-점도표'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장은 이 총재의 소통 시도가 기준금리 결정의 투명성과 전달력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확실히 정통 한은맨이 아니라 여러 국제기구에서 잔뼈 굵은 티가 난다"며 "다른 사람이었다면 대내외 소통을 그 만큼 잘하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간 한은은 소규모 개방 경제라는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향후 금리 인상 경로나 최종금리에 대한 생각을 함구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이는 금리 결정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이 노출되면 자칫 우리 경제가 해외 투기 자본 등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각심 때문이었다.
◇개미들도 인정한 안목…한은 존재감 키워
개인 투자자나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이 총재의 '안목'이 유명해졌다. 이 총재가 시장에 여러 번 던진 경고가 거의 매번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이 총재는 지난해 8월 "연말 이후 금리를 올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으면 자기 책임 하에 손실을 보거나 이익을 보셔야 된다"고 발언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환율이 이런 수준일 때 돌아올 걸로 생각지 않고 해외 위험자산 등에 투자하는 것은 상투를 잡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향후 모두 맞는 말로 판명됐다.
누리꾼들은 그를 이후 '창용신(神)'이라고 불렀다. 올 들어 이 총재가 "부동산 대마불사를 다시 생각해 보라" 발언한 사실이 영끌족 청년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이유다.
이 총재는 이처럼 오랜 내공을 쌓은 경제 전망 능력을 토대로 사상 유례 없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역대 최초로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그의 업무능력 평가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노동조합이 한은 직원 절반가량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4%는 '금리인상 등 물가안정을 위한 노력이 시의적절하게 이뤄졌다'고 호평했다.
◇"정제 발언해야" 비판…중앙은행 독립성 지적도
물론 이 총재에게도 허점은 있다. 특유의 직설 화법이 거꾸로 시장 혼란과 잡음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특히 발언의 톤 조절에 익숙지 않았던 임기 초반에 이런 목소리가 컸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총재가 무리하게 발언해 다음 공개 석상에서 발언의 톤을 조정하는 일이 몇 번은 있었다"며 "최근에는 큰 파문은 없다"고 전했다.
작년 7월 포워드 가이던스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 폭을 0.25%포인트로 사실상 미리 제시한 것이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 '조건부' 지침이었다고 설명했으나, 시장은 같은 해 9월 환율이 급등하자 두 달 전의 지침이 원화 절하를 심화시키는 불씨가 됐다고 화살을 돌렸다.
그 결과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더욱 정교히 다듬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해당 고민의 성과가 한국형 점도표였다. 현재 이는 한은의 기초적인 시장 소통 방식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직원 처우 등 내부 경영에 대해서도 불만이 나온다. 이 총재가 취임사에서 직원 처우 개선을 강조한 반면, 정부가 한은의 인건비 인상률을 결정하는 구조는 그대로인 터라 상황이 1년째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다. 앞선 노조 설문에서도 직원의 46%는 이 총재의 내부경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전임 총재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비판도 따라붙었다.
이 총재는 취임 직후부터 "한은의 책임이 통화정책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며 정부와의 공조를 강조하고 적극 소통을 이어 왔다. 특히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및 금융 당국 수장과 거의 매주 회동을 가졌다. 이 회동에는 우리 거시경제·금융을 이끄는 수장이 4명 참석한다는 뜻에서 'F4' 회의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총재의 적극적인 소통은 한은의 존재감을 키우고 통화와 재정정책 간 정합성을 맞췄다고 인정받는 반면 중앙은행 독립성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최근 정부와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예대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현상이 특히 이러한 비판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은 한은의 최우선 목표인 물가 안정이 향후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앞으로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를 바라는 시장과 정치권의 압박 속에서 높은 근원물가 오름세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icef08@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