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발(發) 급성 돈맥경화 걸린 시장…한은, 자금숨통 틔우기 돌입
한은 금통위, 6조원 RP 매입·적격담보증권 대상 확대 결정
자금사정 넉넉한 은행·증권사 대상으로 우회적 자금 지원
- 김성은 기자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불시에 터진 강원도발(發)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 전반에 '돈맥(脈)경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결국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발 벗고 나섰다. 자금사정이 비교적 넉넉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자금을 우회적으로 바짝 지원해 시장의 꽉 막힌 돈줄을 뚫겠다는 의도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통화 긴축이 진행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이에 역행하는 '무제한 돈풀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은은 이에 선을 긋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7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비(非)통화정책방향 회의를 개최하고 단기금융시장과 채권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강원도의 느닷없는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보증 이행 거부 이후 시장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자 고(高)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에 여념이 없던 한은마저 자금 지원에 동원된 셈이다.
우선 한은은 대출 적격담보증권과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공개시장운영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증권을 오는 11월1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3개월 간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한은이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잡는 증권을 국채, 통안증권, 정부보증채 등 국공채로 한정했으나, 이번에 은행채는 물론 한전채를 포함한 9개 기관 공공기관채도 담보로 잡을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했다.
이는 위기 시 은행들이 빨리 내다팔 고유동성 자산을 보유하도록 규제한 당국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맞추기 위해 최근 시중은행들이 대거 은행채를 발행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기업과 비은행권 채권 발행이 한층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돈 떼일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강원도가 돌연 지급 보증을 거부한 이후 부도 위험이 극히 낮다고 여겨져온 공공기관채마저 기피하는 채권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읽힌다. 특히나 한전채는 전체 신용채권의 36.7%를 차지할 정도로 발행이 급증한 데다, 초우량물(AAA)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외면을 받으며 최근 유찰됐다.
아울러 한은은 금융기관들이 서로 돈을 주고받은 뒤 차액을 결제할 때 담보로 맡겨야 하는 증권 비율을 내년 5월 이전까지 현행 70%로 유지해 자금줄을 풀어주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2월부터는 이 비율을 80%로 늘려야 하지만 이를 3개월 유예했다.
한시적으로 총 6조원 규모의 RP 매입도 실시하기로 했다. 증권사, 증권금융 등 한은의 RP 매매 대상기관을 상대로 내년 1월31일까지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돈풀기 우려를 의식한 듯 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 시에만, 14일물과 같은 단기물 위주로 RP 매입을 실시하겠다고 단서를 붙였다.
아울러 "이번 RP 매입을 통해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다시 흡수되기 때문에 추가 유동성 공급 효과가 거의 없다"고 선을 그었다. RP 매입과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는 그만큼 RP 매각 등을 실시해 시중에 일방적으로 돈이 풀리는 상황만큼은 막겠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당분간 시장 상황을 살펴본 뒤 후속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앞서 금융시장에서는 '무제한' RP 매입과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를 활용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은행·증권사가 필요한 대로 사실상 한도 없이 돈을 꿔주고, 한술 더 떠 회사채와 기업어음마저 한은에 직접 사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한은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화 긴축이 급물살을 타는 와중에 대한민국 중앙은행이 막대한 돈풀기를 한다는 인식이 전 세계에 확산될 경우 영국과 같은 '금융 대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전 세계 경제 상황에 역행해 지난달 약 72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가치 폭락, 영국 국채 금리 폭등의 역풍을 맞고 자진 사임했다.
이와 관련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4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무제한 RP 매입' 조치가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에 "그런 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며 "SPV 재가동은 추후에 필요하면 논의할 수 있으나 지금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se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