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치논리에 억눌린 전기요금…요금 현실화 '빨간불'
정부, 한전 '최악' 적자에도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폭탄돌리기 된 전기료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끝내 올해 2분기(4~6월)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 인상요인 발생에도 '국민의 생활안정'을 이유로 정부는 또다시 전기요금을 억눌렀다. 지난해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6차례의 조정 기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단 한차례의 인상 조차 실현하지 못했다. 연료비 연동제 무용론이 거세게 제기되는 가운데 '정치요금'이 된 전기료의 후폭풍은 온전히 국민 몫이 됐다.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유보 통보'에 따라 전날(29일) 4~6월분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0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한전에 따르면, 산업부는 동결 이유에 대해 "국제 연료가격 상승 영향으로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요인이 발생했으나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필요성과 지난해 12월에 확정돼 오는 4월부터 적용되는 2022년 기준연료비(4.9원/kWh)와 기후환경요금(2.0원/kWh) 인상분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발전업계에서는 국제유가 급등세로 인해 이번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의 인상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또 한전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5조8601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고, 올해 최대 20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낼 것이란 상황이 예고되면서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에 따라 연료비 조정단가가 최대 3원이 인상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한전도 kWh당 3원의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20일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를 하루 앞두고 돌연 일정을 미뤘다. 정부와 한전은 '관계부처와의 협의 중'을 발표 연기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인수위에서 업무보고도 없이 인상을 발표할 수 없었는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인수위 측은 "2분기 전기요금은 현 정부에서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정부와 한전이 새 행정부의 수장이 될 윤 당선인의 의중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적 논리에 전기요금이 발목 잡히게 된 셈이다.
억제된 요금 인상으로 인해 정부가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화 됐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도입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연료비 연동제)'에서 총 6차례 조정 중 4차례나 유보 권한을 발동하며 요금을 '동결'했다.
남은 2차례도 사실상 '-3원'을 인하했다 '0원'으로 되돌린 수준이기에 실질적으로는 단 한번의 요금 인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 때 마다 정부는 '국민의 생활안정 도모'를 이유로 내세웠다.
특히 기획재정부-산업부 간 협의로 진행되는 현행 전기요금 결정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이 연료비 조정단가를 산정해 정부에 제출하면 산업부와 기재부가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그동안 물가 당국인 기재부가 고물가 속 '국민 생활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이처럼 전기요금이 정치논리에 부딪혀 현실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낸 한전은 올해에도 최대 20조원의 천문학적 영업손실이 예고되고 있다. 문제는 공기업인 한전의 부채는 정부의 부채인 만큼, 결국에는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사실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집계한 한전의 올해 실적 전망치는 영업손실 14조8003억원이다. 신한금융투자 등 일부 증권사들은 최근 한전의 올해 영업손익을 19조~20조원 적자로 추정하기도 했다.
비싸게 전기를 사서 싸게 팔아버리는 한전의 손해는 빚으로 누적되고 있다. 이번에도 '동결' 조치 되며 한전의 부채는 크게 불어날 전망이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회사채 9조6700억원을 발행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지난해 연간 회사채 발생은 10조에 육박한 것을 볼 때, 올해 한전의 부채도 천문학적 금액에 달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발전업계 안팎에선 제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누더기'가 된 연료비 연동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연료비 증가분과 환경 비용 등을 포함한 총괄원가 기반으로 요금 제도를 조정해 전기요금의 현실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관측이다.
비현실적인 전력가격은 장기적으로 국가와 국민들에게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새 정부는 전기요금이 더 이상 정치요금이 되지 않도록 '폭탄돌리기'를 멈추고, 과감한 결단을 통해 전기요금 구조도 재편해야 한다. 미봉책에 불과한 현재의 방식으로는 미래세대의 부담 가중에 더불어 국가경쟁력까지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freshness410@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