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드리운 ‘퍼펙트 스톰’ 그림자

위드코로나 시대 동시다발 위기 가능성
퍼펙트 스톰 우려는 전세계가 마주한 문제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2'가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변화의 파고를 넘어서: 디지털 세상과 세대교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내. 2021.12.31/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터닝 포인트: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세계 경제가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코로나)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물가 급등, 자산 거품, 공급망 차질 등 불안 요소가 글로벌 경제를 뒤덮었다.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는 기대가 무색하게, 지구촌이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된다.

퍼펙트 스톰이란 서로 다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거대한 위기로 발전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특히 치솟는 물가와 이에 따른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이 퍼펙트 스톰 우려를 부채질했다. 금리가 상승하면 위기 동안 누적된 부실 부채 문제가 터지고, 증시나 부동산 같은 자산 시장에 낀 거품도 빠르게 꺼지는 등 연쇄적인 위기가 초래될 수 있어서다.

또한, 정부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각종 지원 정책이 연착륙하고 오랫동안 중단한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2021년 늦가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요소수 품귀 현상이 대표적인 예시다. 마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큰 태풍을 불러일으키듯, 우리 경제 어디에서 어떤 악재가 시작될지 종잡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경제 저변에 깔린 불확실성이 확연히 높아진 모양새다. 글로벌 경제가 정말로 폭풍에 휘말릴지, 아니면 폭풍을 비껴갈지 지금은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경제 주체들이 퍼펙트 스톰에 꼼꼼히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은행 위변조 대응 센터에 쌓여 있는 달러화. 2021.6.3/뉴스1

◇코로나19 극복 위한 ‘유동성 파티’…부메랑 돼 돌아오나

퍼펙트 스톰 우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주한 문제다. 지난 팬데믹 기간에 각국 중앙은행들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최우선 목표로 시중에 역대급 규모의 유동성을 풀었다. 세계통화 정책을 좌우하는 미연방준비제도(연준)는 2020년 3월 0.00~0.025% 수준의 ‘제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 뒤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필요한 만큼’ 매입하는 무제한 양적 완화에 들어갔다.

연준의 행보는 과감했다. 2020년 8월에는 물가 안정목표제에 따른 물가 상승 제한 목표를 ‘연간 2%’가 아닌 ‘장기 평균 2%’로 수정했다. 이는 물가상승률이 일정 기간 2%를 넘겨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코로나19 극복과 완전 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파티가 한창일 때 술을 치워 버리는’ 전통적 중앙은행의 역할을 잠시간 접어두겠다는 시그널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각국의 유동성 펌프질은 계속됐다. 이에 우리나라는 2021년 9월 시중 통화량 평균 잔액이 3512조 1000억원으로 전월보다 17조 4000억 원(0.5%) 증가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2.8% 늘어나면서 9개월 연속 10%대 증가 행진을 이어갔다. 시중 통화량 평잔이 처음 3500조 원을 돌파,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 들어 이 같은 유동성 파티는 끝물에 가까워졌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연준이 긴축 이전 단계로 해석되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나섰기 때문이다. 연준은 2021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앞으로 자산매입 축소 속도를 두 배로 높여 2022년 6월로 예정된 종료 시점을 3월로 앞당기고 기준금리도 세 차례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당시 연준이 확장적 통화 정책 경로에서 살짝 방향을 튼 것은 자국에서 불붙은 물가 급등세가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내 물가는 아주 빠른 속도로 올랐다. 예를 들어, 2021년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2%로, 1990년 12월(6.3%) 이후 약 31년 만에 가장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 급등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경기 회복과 수요 증대, 계속된 유동성 공급 등 모든 요인이 물가를 부채질했다. 국내 물가상승률은 2021년 10~12월 3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한 끝에 연간 2.5%로 10년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물론 미국이 언제 금리를 올릴지는 알 수 없다. 한쪽에서는 테이퍼링이 끝나는 2022년 3월 인상을 전망하고, 다른 한쪽은 물가 상승 폭이 서서히 축소돼 2022년 금리 인상 동기는 없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이 끝나면 (기준금리 인상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 버블 논란도 커진다. 위기 극복을 위해 찍어낸 돈이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 흘러가면서 자산시장에 일정 부분 거품이 꼈다. 이 거품이 서서히 연착륙 가능한 수준인지를 두고서는 현재로서 ‘과도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200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마이클 버리 사이언애셋 창업자는 최근 주식 시장과 관련해 “대공황이 있었던 1920년대보다 투기가 더 많고, 닷컴 버블이 일었던 1990년대보다 주가가 과대 평가됐다”는 견해를 밝혔다.

점증하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미국에서는 주요 경제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이 늘어나는 중이다. 심지어 연준이 인플레 통제에 실패하면서 실기를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공공연하게 나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1년 11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고물가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급격한 시장 조정으로 많은 투자자가 신용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시중은행 창구에서 대출을 상담하는 청년. 2021.4.29/뉴스1

◇내년은 ‘긴축의 시대’…가계 부채 + 부동산 영끌 ‘뇌관’

이처럼 2022년은 지구촌이 본격적으로 긴축을 시작하는 해로 평가된다. 통화만 아니라 국가 재정도 긴축에 접어들었다. 세계 주요 5개국 가운데 재정준칙을 법제화한 미국, 독일, 프랑스는 2022년도 예산안 규모를 전년도 결산 추정액 대비 평균 14.8%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19.1%, 미국은 17.1%, 프랑스는 14.8%를 줄였다.

한국은행은 이미 2021년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에서 1.0%로 올리고 2022년 초 추가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시장에서는 1월 연속 인상 가능성까지 예상한다. 미국보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낮은데도 선제적인 긴축 채비에 나선 것은 세계 최악 수준의 가계부채 문제 탓이 크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는 유력한 진원지로서 손꼽힌다. 2021년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2020년 말(1518조1000억원)보다 100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이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4%대로 더 엄격히 관리할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돈줄이란 돈줄은 모두 조이는 긴축의 시대가 찾아왔다.

가계부채와 밀접히 연관된 부동산 시장의 불안도 상당하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유동성 팽창과 다년간의 주택 수급 조절 실패로 인해 집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평생 집을 살 수 없다는 공포에 쫓긴 2030 세대는 코로나19 시기 초저금리를 활용해 부동산 매수와 투자에 나섰다. 이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라는 세태까지 대두했다.

긴축이 시작될 경우 이자율은 오르고 이들 ‘영끌’ 세대의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특히 자산 거품이 빠진다면 더욱 그렇다. 앞서 청년층을 휩쓴 주식 투자 열풍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실 부채와 자산 거품 문제가 경제 전반에 위기를 퍼뜨리는 퍼펙트 스톰 가능성이 우려된다.

◇요소수서 엿보인 퍼펙트 스톰…철저한 대비가 새 정부 과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드리운 그림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GVC)이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소부장에 이어 2021년 11월에는 요소수라는 일상 범용 품목까지 공급난이 초래됐다.

오랜 기간 침체됐던 글로벌 경기가 시장 예측보다 빠르게 회복된 탓에 국제 무역상 수급 불균형이 심해졌다. 여기에 경제가 정치·외교·안보와 결합한 ‘경제 안보화’ 현상이 GVC 불안에 불을 지폈다.

2021년 출범한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국 중심주의를 천명한 트럼프 정부와 서로 다른 당파임에도 경제와 안보를 하나처럼 생각하는 점에서 흡사했다. 이에 글로벌 경제가 자유무역과 골디락스(안정적 물가 상승 속 경제 성장 지속) 시대를 끝내고 보호무역주의로 회귀 중이라는 진단마저 제기됐다.

이런 국제 정세는 우리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자원 빈국으로, 원자재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수출을 통한 경제 성장이 막히게 된다. 게다가 주요 수입 품목의 특정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차질에 더욱 속수무책이다. 요소수 사태처럼 GVC에 작게 뚫린 구멍도 연쇄적 인 경제 위기, 즉 퍼펙트 스톰을 촉발할 수 있다.

사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GVC가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널리 회자돼 온 것이다. 그만큼 정부로서는 공급망 변화에 대처할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요소수 사태에 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정부는 미래 위험 대비에 미진했다.

이준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본부장은 “미·중기술 패권 경쟁, 주요국의 핵심 부품 공급망 전략자산화, 탄소 중립 등의 이슈가 향후 10년 이상 GVC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민관 합동 거버넌스를 통해 단순 리스크 관리를 넘어서 소부장 육성, 첨단산업 유치와 유턴촉진 등 산업 정책 차원의 공급망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다수 경제 기관들은 한국의 성장률이 2020년 마이너스(-) 0.9%에 이어 2021년 4%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 2020~2021년 합산 성장률만 봐서는 한국이 선진국 중 제일 신속하게 회복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시련들에 한발짝 늦은 대응을 이어간다면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도 함께 나온다. 2022년 출범하는 새 정부에 막중한 책무가 주어졌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