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읽는 경제] '오징어 게임'처럼 신체포기각서 쓴다면?

주인공 기훈 7000만원 사채 빚에 신체포기각서 작성
법적으로 각서 무효…최고이자율도 연 20%로 제한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 (사진=<오징어 게임> 스틸컷) ⓒ 뉴스1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은 사채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빈털터리인 기훈이 돈을 갚지 못하자 깡패로 보이는 사채업자는 기훈을 뒤쫓아와 신체포기각서를 쓰라고 협박한다.

깡패 (기훈에게 송곳을 들이대며) "너, 코피가 왜 잘나는지 알아? 코안에 모세혈관이 많아서 그래~."

기훈 "갚을게요! 정말이에요. 갚을게요! 으흑흑흑흑."

깡패 "아~, 진짜 왜 마음 약해지게 울고 그래~. (기훈에게 신체포기각서를 들이대며) 자, 눈물 닦고 여기, 지장 찍어! 왜? 싫어?"

기훈 "아, 아니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건장한 깡패 4명에게 둘러 싸인 채 생명의 위협을 받은 기훈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깡패에게 맞아 줄줄 흐른 자신의 코피를 손가락에 묻혀 신체포기각서에 지장을 찍는다. 기훈이 억지로 서명한 신체포기각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체포기각서>

채무자 성명 성기훈 주민등록번호 741031-1185623

'본인은 햇빛금융론으로부터 70,000,000원을 대출받았으나 약속한 기한까지 변제하지 못하였기에 계약에 따라 담보물로 설정된 주요 장기를 비롯한 신체 전부에 대한 권리를 사업자 햇빛 금융론에 양도하며, 이를 확인하여 분란의 여지를 없애고자 이 각서를 작성합니다.'

2020년 6월 8일 서명인 성기훈

햇빛론 대표 김정래 귀하

더는 잃을 게 없는 기훈이 총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정체불명의 생존 게임에 참가하게 된 계기다.

그러나 현행법상 신체포기각서는 불법이다. 민법 제103조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포기각서는 법적으로 무효다. 기훈이 이 각서 내용을 전혀 따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선 기훈이 깡패들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고소할 수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신체포기각서를 강제적으로 쓰도록 한 것은 '강요죄'에 해당된다"며 "송곳과 같이 위험한 물건을 들이대며 기훈을 겁준 것은 '특수협박죄', 깡패 여럿이 기훈을 둘러서서 때린 것은 '특수폭행죄', 깡패들이 조직폭력배 소속이라면 '범죄단체활동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 속에서 기훈을 때린 깡패의 경우 통상 1년의 실형이 선고된다"고 전했다.

(사진=<오징어 게임> 스틸컷) ⓒ 뉴스1

신체포기각서가 무효라고는 하지만 기훈의 7000만원 빚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파산한 게 아니라면 이 빚은 갚아야 할 돈이다.

다만 <오징어 게임>에서 채권추심자로 등장하는 깡패들이 기훈과 같은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할 때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아무리 빚이 많은 채무자라고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만큼은 살 수 있도록 채권추심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채권추심법에 따라 채무자를 폭행·협박·체포 또는 감금한 채권추심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정당한 이유 없이 야간(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에 반복적으로 채무자를 찾아가거나, 이 시간에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채무자에게 공포를 유발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이자제한법도 있다. 은행 대출이든 사채든 간에 금전대차 거래 시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제한한 법이다. 종전 최고이자율은 연 24%였으나 올해 7월 7일부터 연 20%로 인하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연 20%를 초과한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단 10만원 미만의 소액 거래는 제외된다.

만일 기훈이 대출이자 25%로 돈을 빌린다면 법정 최고금리 20%를 초과한 만큼의 이자에 대해선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는 채권추심자가 직접 채무자를 찾아가 무지막지하게 협박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한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그보다 '선이자'에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사채업자로부터 연 이자율 10%에 100만원을 빌리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채무자는 연간 10만원의 이자를 따로 내면 된다. 그런데 사채업자가 계약서에는 '대출금 100만원'이라고 적어놓고, 막상 채무자에게 돈을 줄 때는 이자 10만원을 미리 공제한 90만원만 건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적 다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법조계 또 다른 관계자는 "선이자를 뗄 경우에는 대출계약서나 확인증에 선이자로 얼마를 냈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좋다"며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문서에 이를 쓰지 못했다면 대출 계약 당시 '선이자 떼고 계약서 쓴 거 맞죠?'라는 대화가 들어갈 수 있도록 상황을 녹음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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