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부실·정치공방'...경제부처 국감 '맹탕' 재현

특히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제부처의 경우 의원들이 대선후보 꽁무니를 쫒아다니느라 자료준비를 소홀히 한데다 핵심 증인불참과 정치쇼까지 더해지면서 국감장은 연일 얼룩지고 있다.

경제부처 국감은 5일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를 시작으로 8일 지식경제부·금융위원회, 9일 한국은행·금융감독원 11일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등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내로라하는 기관들을 도마위에 올렸다.

하지만 15일까지 열흘간의 국정감사 성적표는 합격점이라 보기는 어렵다.

우선 의원들의 자료 준비 부실 문제가 눈에 띈다. 의원들의 정책 자료집의 상당부분은 이미 다른 곳에서 내놓은 보고서 내용이나 심지어 언론보도를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

예전의 국감이나 기관 현안보고때 나온 자료들을 조금만 포장해 다시 울겨먹는 '재탕'식 질의도 여전했다.

'공정위 퇴직자 재취업 기간 평균 28일' '공공기관 아방궁 신청사' 등 퇴직 공무원 유관기관 취업 실태나 고위 공무원 해외 출장사례, 공무원 징계 현황 같은 매년 이맘때면 구식 녹음기 틀 듯 단골메뉴로 내놓는 아이템들도 많았다.

이마저도 보좌관들이 준비해온 자료를 사전에 깊이있게 연구한 것처럼 보이는 의원들도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경제 엘리트 관료들이 '내공'을 앞세워 치고 나올 경우 불문곡지하고 감정적으로 쏘아붙이거나 태도만을 문제삼아 길길이 날뛰는 의원들도 있었다.

업계 핵심 증인들의 국감거부도 올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1일 정무위원회 공정위 감사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국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란히 증인대를 보이코트했다.

이들은 죄다 '속보이는' 해외 출장을 핑계로 줄줄이 불출석을 통보했다.

이날 감사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경제 사회계 이슈로 떠오른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과 증인들간에 ‘끝장토론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이 자리에는 불법적인 M&A로 중소기업을 사들이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경제부처 국감장도 사정은 오십보 백보였다.

8일 금융위 국감장에 증인으로 호출받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국제회의 참석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내세워 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서 의원들을 허탈하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국감장은 마치 추석대목을 맞은 수산물시장처럼 대선을 앞둔 의원들의 정치공방장으로 돌변했다.

11일 국세청 감사에서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표적 세무조사와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소유 의혹을 제기한 안원구 전 서울국세청 국장의 국감장 문전박대 사건을 놓고 현직 국세청장 고소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니나다를까 유력 대선후보 3인을 겨냥한 정치 공세도 끊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는 조카 사위인 대유 신소재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64억의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주장이,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지난 1999년 안랩의 신주 인수권부 사채 헐값 인수 의혹이 연일 시빗거리로 떠올랐다.

전국 27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의 이경률 공동 단장은 "19대 국회에 초선의원들이 대거 진출했는데 국감을 처음하다 보니 준비와 진행에 미숙함을 보이고 있다"며 "여야 간사들도 각당의 의견을 취합해 질의해야는데 절차를 무시한채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단장은 이어 "보도자료를 베껴서 질문하는 광경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며 "국감을 준비하는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경제관료들과 '맞짱'을 뜰수 있는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ndrew@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