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부총리들 '조언자'로 한자리에…"부처 간 제로섬 게임 깨야"
추경호 "공직자들 헌신 감사"…현직 관료 나란히 인사도
"불필요한 규제 많아…힘 있는 부처가 규제 개혁 맡아야"
- 최현만 기자
(세종=뉴스1) 최현만 기자 = "오랜만이에요. 허허"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책임지던 십여 명의 전직 경제 부총리·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직 경제수석, 공정거래위원장, 통계청장 등 장차관급까지 범위를 넓히면 참석한 경제원로가 서른 명 가까이 됐다.
이들은 조그마한 스탠딩 테이블에 놓인 다과를 먹고 웃으며 "반갑습니다" "자네는 뭐 하고 지냈나"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잘 다려진 양복 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채 격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표정은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은 듯 편해 보였다.
추경호 현직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타나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져나왔다. 전직 부총리·장관 등 경제원로들의 눈길도 '현직' 부총리를 향했다.
경제원로들 역시 한때는 수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던 정책 입안자들이었으나 이제는 경제 정책의 조언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부처 간 제로섬 게임을 깨야 한다"거나 "건전 재정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25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한국 경제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가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다.
강경식·전윤철·진념·현오석·최경환·유일호·변양균·장병완·홍남기 등 역대 경제 부총리·장관과 조원동 전 경제수석,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추경호, 역대 부총리들 언급하며 '박수' 유도…세계은행 "놀라운 사례"
추 부총리는 이날 개회사를 통해 경제 발전의 역사를 되짚었다.
추 부총리는 "6.25전쟁의 폐허 속에 변변한 생산시설 하나 남은 것이 없었고 국방은 물론 국가재정도 꾸려갈 수 없는 형편에 잘살아 보자는 일념 하나로 경제개발을 시작했다"며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했고 해외시장을 주 무대로 삼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고 2021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한 바 있다"며 "이제는 세계 8강, G8 진입을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기업인과 근로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 KDI와 같은 싱크탱크들의 전문성과 지혜,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도움, 자유무역 질서 확대라는 세계경제 환경,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적절한 비전과 실천계획을 담아 정책을 수립·추진한 정부 공직자들의 헌신과 리더십 등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경제발전 정책을 주도하고 헌신적으로 애써주신 역대 부총리님들, 장관님들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들 수고하셨고 고맙다는 의미에서 큰 박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곧바로 좌중에서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축사를 맡은 안나 비예르데 세계은행 사무총장은 한국이 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점을 언급하면서 "놀라운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단순히 열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며 "한국 정부의 정책 중 어떤 게 효과가 있었고 어떤 게 효과가 없었는지 알고자 한다"고 말했다.
◇점심 오찬서 실·국장들 나란히 인사…전직 부총리 건배사도
추 부총리를 비롯한 현직 기재부 관료와 경제원로들은 점심 오찬을 함께 했다. 한 경제원로는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 감사하다"며 추 부총리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추 부총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배운 역사인데 지혜도 모으고 미래에 관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 전문가들 얘기도 듣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KDI와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밤낮없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배우는 공간을 열어주시고 많은 외부 전문가들의 견해도 담아낼 수 있도록 제도와 방식, 문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후 추 부총리는 방기선 기재부 1차관, 최상대 기재부 2차관, 이형일 차관보, 고광효 세제실장, 조용범 대변인 등 현직 관료들을 앞으로 불러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소개했다. 그리고 추 부총리가 "일동 경례"라고 외치자 다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환영사 이후 전직 장관이나 부총리의 조언도 이어졌다. 마이크를 잡은 장병완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60년의 성과는 정말 기적과 같지만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60년에도 기적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 전 장관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국가적 위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건전재정 구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그런데 최근 GDP 대비 국가 채무가 급상승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적인 요구들이 나오고 있어 재정을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 공적 연금의 부실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정 건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재정 준칙이 법제화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들께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설득을 해달라"고 덧붙였다.
건배사를 맡은 전윤철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각 부처가 전부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며 "쉽게 말하자면 농림부는 쌀값만 올리려고 하고, 노동부는 임금만 올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합이 정말 힘들다는 걸 느꼈다"며 "죄수의 딜레마를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지적했다.
전 전 부총리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는 규제개혁위원회가 아닌 다른 기구에서 규제 개혁을 맡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 전 부총리는 "정부 부문에 쓸데없는 규제가 많다"며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나 시장 경제의 파수꾼인 공정거래위원회 등 힘 있는 다른 기구가 개혁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간담회서 "노동·연금·재정개혁 합의 중요" "수출 경쟁력 확보 중요" 목소리
오찬에서 강경식 전 부총리는 "경제·사회가 돌아가는 기본 원칙은 자리이타(自利利他·자신의 이익이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여야 한다"며 "정치·교육 부문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진념 전 부총리는 "노동·연금·재정개혁 추진 시 대국민 소통을 통해 정책에 대한 합의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무엇을 할지보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정책을 전달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 전 부총리는 정부와 정치권이 난상토론 등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동호 전 내무부 장관은 "현 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가 호전될 필요가 있다"며 "가격 경쟁력, 품질 향상, 기술 개발 등 수출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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