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가계동향조사 표본이 되어보았습니다

세종에서 4개월간 1인가구 표본으로 참여…약 3500명 대표
점심 순대국 8000원, 후식 아이스크림 2000원…매일 수입·지출 기록

가계동향조사 가계부ⓒ 뉴스1

(세종=뉴스1) 서영빈 기자 = 지난 2월 늦은 오후 퇴근길,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원룸의 길고 텅 빈 복도를 서성이고 계셨다. 눈이 마주치자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자신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조사원이라고 소개했다. 설문에 응답해줄 1인가구를 찾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계동향조사 관련 기사를 직접 쓰는 입장에서 조사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 그 뒤로 약 4개월간 조사에 임하게 됐다. 4개월간 설문에 참여하며 느끼게 된 조사 참여의 좋은 점, 개선점을 나누고자 한다.

참고로 가계동향조사 표본으로 참여하게 되면 매달 말까지 한 달 치 가계부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매일의 지출과 수입 액수, 내역을 꼼꼼히 작성해야 하고, 월마다 나가는 세금, 통신비, 용돈 등도 기입해야 한다. 며칠에 순댓국집에서 얼마치를 먹었고 후식으로 뭘 먹었는지, 편의점에서 뭘 샀는지 항목별로 모두 가계부에 써야 한다. 내가 기록한 모든 것들이 이 일대 지역 일인가구 약 3500가구를 대표하게 되는 것이었다.

가계동향조사는 이를 통해 매 분기마다 가계의 소득, 지출과 관련된 통계를 내놓는다. 꽤 유명한 '5분위 분배율'(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도 이 통계에 기반을 둔 것이다.

가계동향조사 응답 감사품ⓒ 뉴스1

◇훌륭한 감사품…끈질기고 친절한 조사원

우선 가계동향조사에 응한 데 대한 감사품이 무척 훌륭했다. 필기도구가 담긴 필통과 함께 무선 청소기를 받았는데, 이는 일인가구에 꼭 필요한 요긴한 물건이었다. 사실 세종시 원룸에 이사 온 뒤로도 돈이 아까워 청소기 구매를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있던 머리카락을 모두 치울 수 있게 됐다.

거기다 매달 가계부를 제출할 때마다 10만원 안팎의 상품권이 지급됐다. 이정도면 실제로 들이는 노동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은 보상이었다. 미안한 마음에라도 좀 더 성실히 조사에 임하게 되곤 했다. 또 독자들도 앞으로 복도를 서성이는 통계청 조사원을 마주치게 된다면 큰 행운을 만났다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시면 좋겠다.

물론 아무리 보상이 있다 해도 가계부를 쓰는 데 나태해지기 쉬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사원이 끈질기고 친절하게 응답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목 표시가 안된 지출내역이나, 통신비처럼 마땅히 지출내역에 있을 법도 한데 누락된 부분 등을 잡아내 재차 물어보시고는 했다. 조사원들의 노력에 따라 가계동향조사가 좀 더 엄밀한 통계가 되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계동향조사 가계부 작성방법ⓒ 뉴스1

◇지출조사의 한계

다만 응답자와 조사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계동향조사가 가질 수밖에 없을 한계점도 보이게 됐다. 특히 소득 조사보다 지출 조사가 좀 더 현실과 괴리되기 쉬워보였다.

가계동향조사는 지난해까지는 소득과 지출 부문을 분리해 조사해왔다. 소득은 분기마다, 지출조사는 매우 까다로운 만큼 연 단위로 조사해 발표했다. 올해부터는 소득·지출 조사를 통합해 분기마다 같이 발표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임금근로자의 경우 소득 내역은 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 달간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 건수 자체가 월급, 자잘한 지원금을 포함해 4건을 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따라서 입금내역을 확인하고 기억해내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지출내역은 자잘한 편의점 결제를 포함해 하루에도 열건 가까이 되는 날이 많다. 그러다보니 월말에 벼락치기로 가계부를 작성하다보면 월 중순까지의 결제내역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우유, 사과, 과자, 속옷 등을 포함해 총 4만원 정도를 결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월말에 카드 사용내역을 조회했을 때는 그저 '편의점 4만원'으로만 기록돼있었고, 아무리 떠올려도 그 4만원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사 가계부에는 '과자 4만원'로 적어 냈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답변 방식은 분명 조사의 오차를 키운다. 가계동향조사 지출부문은 크게는 식료품·비주류음료와 의류·신발 등으로 분류될 뿐 아니라 식료품 내에서는 또 과일, 곡물가공품 등으로 더 세세하게 나눠진다. 필자의 응답은 그런 세분류간 경계를 어그러뜨렸다. 필자의 응답만 놓고 본다면 과일, 유제품, 의류의 지출액은 실제보다 과소 측정됐고 곡물가공품 지출액은 과대 측정됐다.

물론 이는 필자가 애초에 그날그날 가계부를 기입하지 않고 월말에 벼락치기를 한 탓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 응답자들이 이상적인 방식만으로 조사에 응할지 알 수 없다. 응답자가 벼락치기를 하는지 아닌지 관리할 수단이 없다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가계동향조사의 지출조사에 한해서는, 특히 세분류에 관해서는 그 값들의 실제 오차가 통계청에서 가정하는 것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가계동향조사 PC용 전자 가계부ⓒ 뉴스1

◇IT기술과 조사의 융합 '가져오기' 기능…명과 암

가계동향조사 가계부는 소책자에 수기로 기입해 제출할 수가 있고,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전자 가계부로 쓸 수도 있다. 이 전자 가계부에는 '가져오기'라는 아주 훌륭한 기능이 있다. 바로 내가 사용하는 은행계좌로부터 입금·지출내역을 한꺼번에 가계부로 불러오는 것이다. 입출금 액수와 그 금액을 결제한 사업장 이름이 함께 기록되고, 사업장 이름을 통해 대강의 지출 내역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 기능을 통해 가계부를 작성하는 데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아주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조사의 정확성도 크게 향상됐다. 특히 소득조사보다 지출조사에 응답하는 것이 아주 편리해졌다. 본인의 경우 적어도 액수에서만큼은 전체 지출 액수의 90% 이상이 가계부에 정확히 담겼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가져오기' 기능 이전의 지출 조사와 그 이후의 지출 조사를 과연 같은 조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첫 번째 달에 미처 '가져오기' 기능을 알기 전에는, 기억나는 중요한 지출 위주로만 가계부를 적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가계부 제출 직전 이 기능을 알고 사용하게 됐다. 그 결과 지출 총액이 약 2배나 크게 잡혔다. 조사 결과로만 보자면 필자는 '가져오기' 기능 이후 갑자기 평소보다 2배로 돈을 써대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셈이다.

물론 이 또한 필자가 처음에 성실하게 가계부를 기입하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그러나 IT기술의 보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크게 마련이다.

이런 영향이 크고 작게 모든 응답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면, '가져오기' 기능 도입 이전과 이후 지출조사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소비성향이 이전보다 약간 더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가져오기' 이전과 이후 지출 통계를 일관된 시계열 위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연령대별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카드보다 현금 사용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또 공인인증서를 다운받아 로그인하는 등 은행 계좌 사용내역을 '가져오기' 하는 일련의 과정이 어렵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높은 연령대일수록 '가져오기' 기능을 잘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이들 연령대가 응답하는 지출 액수가 젊은 층이 응답하는 지출액수보다 훨씬 과소평가돼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간편결제 서비스, 법인카드 등 아쉬운 점

이외에도 전자 가계부가 가진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첫째로 '가져오기' 기능을 쓸 때 은행계좌에 연결된 네이버 페이, 카카오 페이 등 간편결제서비스로 결제한 내역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상호명이 '네이버 페이' '카카오 페이'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몇 주일 전에 인터넷에서 결제한 자잘한 거래내역들이 '네이버 페이'라는 이름으로만 기록돼있어 어디에 쓴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갈수록 이 같은 간편결제서비스를 통한 인터넷 결제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구매상품 내용을 서비스 이름과 함께 병기되도록 하는 것이 조사의 정확도와 편리함을 높이는 데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 법인카드 사용내역은 소득과 지출에 넣기 까다롭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회사에서 지급받는 법인카드는 비록 본인의 소득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서 사용되면 전체 소비 증가에 기여하고 본인의 후생은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가계부에 넣기에는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다.

우선 법인카드는 본인의 명의로 개설한 게 아닌 만큼 '가져오기' 기능을 연동하기가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다 해도 법인카드를 회사 사람들과 같이 사용할 경우 법카 사용내역을 한꺼번에 가계부로 가져오기도 애매할듯하다. 적어도 이런 모든 것들이 지출조사의 실질적인 오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져오기' 기능을 통해 한 달간의 지출내역을 모두 가계부로 불러온다 해도, 몇 주일 전 기록으로 남은 '편의점 5만원 사용' 내역의 구체적인 구성을 기억해내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문제다.

이는 모바일 가계부가 가진 휴대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모바일 가계부와 PC 전자 가계부 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

그런데 모바일의 특징은 매일매일 푸시 알람을 보내 응답자에게 반복적인 행위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전자 가계부 애플리케이션이 매일 자동으로 그날치 계좌 지출내역을 '가져오기' 한 뒤에, 저녁마다 응답자에게 그 지출내역을 재분류하고 다듬도록 알람을 준다면 어떨까. 지금보다 훨씬 정확도 높은 지출 조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계동향조사 응답기간 종료 후 감사장ⓒ 뉴스1

suhcrat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