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있으세요?…MRI 찍고 치료비 1000만원
일부 병원 '고가 비급여 진료' 남발해 나이롱환자 양산…손보사 손해율 악화 직격탄
- 신수영 기자
(서울=뉴스1) 신수영 기자 = 서울 마포구에 사는 A씨(42세, 여)는 아이를 업다가 허리를 다쳐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추간판탈출'(허리디스크)이라는 진단을 내리고는 '실손보험이 있느냐, 있으면 이참에 종합적인 검사를 하라'고 권했다. 실손보험의 보장내용을 알려주면 그에 맞게 치료스케줄을 잡아주겠다는 거였다. 아이를 낳고 허리가 좋지 않았던 A씨는 '잘됐다' 싶어 경추에서부터 요추까지 CT(컴퓨터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를 찍기로 했다. 주사치료와 물리치료, 도수치료(손으로 하는 물리치료) 등 각종 치료도 받았다. 53일동안 총 40번 병원을 방문했으니 거의 매일 간 셈이다. 치료비는 1000만원 가까이 나왔다. 이중 42만원은 건강보험(급여 진료)에서 나가고 나머지 약 950만원이 A씨 부담이었다. A씨는 급여진료 항목중 본인이 내야하는 본인부담금 37만원을 내고 나머지 910여만원을 실손보험으로 처리했다.
"실손보험이 있으면 하루 입원하세요. 그러면 보험금에서 치료비용이 다 충당됩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환자들이 가입한 실손보험에서 보험금이 나온다는 점을 활용해 고가의 비급여 진료(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권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은 진료비를 더 벌 수 있고, 환자들은 '보험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에 비싼 치료를 쉽게 받아들인다.
◇실손보험 있으니…비급여 진료 맘놓고 펑펑
대표적인 것이 각종 자양강장 주사와 소위 '힘주사'로 불리는 에너지대사 관련 주사 등 영양제주사들이다. 5만~20만원 정도로 비싸지만 실손보험에서 보험금이 나와 환자들이 느끼는 부담이 적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료에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정형외과 수술 등을 한 뒤에 환자에게 이런 주사제를 놓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 보험사는 어깨수술을 했던 한 남성 고객이 진료비 460만원 중 180만원을 이런 영양제 주사 비용으로 청구하기도 했다.
도수치료를 이용한 과잉·부당 청구도 흔하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의료기관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데다, 의사가 아닌 운동치료사들이 치료하고도 고가의 진료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동차보험이나 산재보험에서 도수치료를 받으면 1일 진료비가 1만6520원이지만 이를 비급여로 진료받으면 병원에 따라 1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로 다양하다. 지난해에는 한 20대 청년이 한달간 입원하면서 도수치료만 69번을 받고 500만원이 훨씬 넘는 보험금을 청구하기도 했다.
일부 병원들은 간단한 수술이나 MRI 촬영 등을 해야하는 환자들에게 실손보험이 있다면 하루 입원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손보험은 통원한도(지급되는 최대 보험금)가 20만~30만원이지만 입원을 하면 이 한도가 수백, 수천만원까지 늘어난다. 중소형 병원이라도 MRI 가격은 30만원을 웃돌므로 입원을 해서 MRI를 찍고 실손보험에서 입원비와 MRI 비용을 받는 것이 낫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손보사 손해율 악화, 주력 상품 장기보험에도 악영향
이러다보니 손해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악화일로(손해율 상승)다. 이에따라 손보사들이 몇년 전부터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장기보험의 손해율도 나빠지고 있다. 대부분 장기보험에는 각종 실손보험 항목들이 특약 등으로 얹혀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사의 경우 2013년 1분기 80% 중반이던 장기보험 위험손해율(보험가입자에게서 받은 보험료 중 보험금으로 지급된 비율)이 올 1분기 90% 중반으로 올랐다. D사의 장기보험 위험손해율도 이 기간 80% 중반에서 80%대 후반으로 뛰었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장기보험 가운데 사망담보(사망시 보험금 지급) 손해율은 안정적인데, 실손보험이 문제"라며 "장기보험의 손해율이 나빠지는 이유가 결국 실손보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보험만 나이롱 환자?…차보험 →실손보험으로 세대교체
보험업계는 그동안 자동차보험에서 만연했던 '모럴해저드'(연성보험사기)가 실손보험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한다. 사실 자동차보험은 손보사 매출(원수보험료) 절반을 넘는 대표 상품이었지만, 적자가 지속되면서 주력에서 밀려났다. 대신 계약기간 3년 이상인 보험을 말하는 장기보험이 대표 상품으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보험금 허위, 과다 청구에서도 자동차보험에서 실손보험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올 상반기 금감원이 기획조사 등을 통해 적발한 보험사기 금액(3105억원) 중 생명보험·장기손해보험(49.7%)의 비중이 자동차보험(47.2%)을 추월한 것도 이런 추세를 일부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무분별한 실손보험 청구는 건강보험 재정에도 좋지 않다. 실손보험은 진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에 대비하는 보험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나머지 급여 진료비는 환자가 일부를 본인부담금(평일 외래진료 기준 30%)으로 내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지급한다. 진료비가 늘수록 건보공단에서 병원에 주는 진료비도 증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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