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 '첫 단추' 어디에…관세 압박 속 다시 부상한 '원전 카드'

美, 관보 준비 언급하며 '속도·방식' 압박…협상 초점 투자로 이동
현실적 이행 카드로 거론되는 '원전 협력'…통상·외교 설득 총력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략 광물 비축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선임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한미 통상 협상이 관세 문제를 넘어 대미 투자 이행의 구체성을 둘러싼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관세 인상과 관련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 방식과 속도를 거듭 문제 삼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협상의 현실적 돌파구로 원자력 협력 카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4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가 국회 절차에 막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무역 합의에 따른 한국의 투자가 국회 절차로 인해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관세를 15%에서 25%로 재인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워싱턴에 급파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연이틀 협의를 가졌지만, 미국은 관보 게재 준비 등 관세 인상과 관련한 행정 절차에 사실상 시동을 건 상태다. 이에 정부는 조현 외교부 장관까지 방미에 나서면서 산업·통상·외교 라인을 총동원한 설득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정부의 전방위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관세 압박을 넘어 '투자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부터 한국과 일본의 대미 투자 총액을 7500억 달러 규모로 묶어 거론하며, 첫 투자처로 원자력 분야를 직접 지목해 왔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해 12월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한미 관세 합의에 따라 한국이 약속한 투자금을 원자력 분야에 우선 투입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우리는 원자력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미국에 전력 발전을 위한 원자력 병기고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는 여기(미국)에 짓고, 현금흐름을 50대50으로 나눌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과 체결한 투자 양해각서(MOU)에는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프로젝트가 명시되기도 했다.

원전, 대미 투자 이행의 현실적 출발점으로…단일 프로젝트 단위로 설득 용이

최근 김정관 장관의 방미 행보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상무부 협의와 별도로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에너지·자원 협력 채널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라이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으로, 원전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전 수출과 자원 협력이 여전히 산업통상부 소관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김 장관이 원전 협력을 대미 투자 이행의 구체적 출발점으로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전은 미국이 당장 필요로 하는 전략 산업이면서도, 한국이 비교적 빠르게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분야다. 미국은 중국·러시아 견제를 위해 원전 산업 재건을 추진하고 있지만, 신규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 설계·건설·운영 전 주기를 아우르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단순한 재무 투자보다 실물 협력 형태로 투자 이행을 제시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내부에서도 원전이 대미 투자 이행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는 분위기다.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약속 전체를 한 번에 집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단일 프로젝트 단위로 설명 가능한 원전 협력이 협상 카드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관가 안팎에서는 김 장관이 이를 위해 기업 총수들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대미투자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조현 외교장관·여한구 통상본부장, 美서 '설득' 총력전…통상·외교 채널 총가동

미국의 관세 인상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목표 아래 정부는 릴레이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김 장관 방미에 이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는 5일까지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와 연방 의회, 미국 업계 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나 설득전에 나선다. 조현 외교부 장관 역시 4일 미 국무부가 주최하는 핵심광물 장관급 회의 참석을 계기로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의 양자 회담을 추진하는 등 외교 채널을 통한 설명에 나선다.

다만 관세 압박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법안 발의 시점에 맞춰 관세 재인상 카드를 꺼낸 만큼, 법안 통과와 실제 투자 이행까지 확인하려는 압박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SNS 압박 방식 역시 실무 협의에 앞서 정치적 메시지를 극대화하려는 전술로 해석된다.

향후 국면은 한국이 대미 투자와 관련해 어떤 신호를, 어느 정도 속도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관세를 실제로 올리는 데는 미국 역시 부담이 따르지만, 투자 이행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관세 위협을 협상 수단으로 계속 활용할 여지는 남아 있다. 대미 투자 첫 단추를 어디에 끼우느냐에 따라 관세 국면의 향방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측의 관세 관련 행정 절차와 발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국내 상황을 미국 측에 잘 설득할 수 있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