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가스전 개발 표류…정부 인가 지연에 BP 협상도 제자리

감사원 실지감사·산업부 인가 보류로 우선협상 체결 무기한 지연
"정부 예측성 흔들리면 메이저 이탈 우려"…사장 공모도 변수로

지난해 12월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는 고래 조형물 뒤로 동해심해 가스전 유망구조에 석유·가스가 묻혀 있는지를 확인할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가 입항해 있는 모습.ⓒ News1 윤일지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동해 심해 가스전 2차 개발사업이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은 채 지연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지난 10월 글로벌 오일 메이저인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산업통상부가 한 달 넘도록 조광권 양도 인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사업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지연이 길어질수록 해외 메이저 기업들의 신뢰 리스크가 커진다는 점이다. 해외 자본이 심해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가장 중시하는 요소가 정부의 정책 일관성과 절차적 예측 가능성인데, 이번과 같이 인가 과정이 장기 표류하면 '한국 심해 개발은 정책 리스크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지난 10월 중순 BP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으나, 해당 조치를 마무리하기 위해 필요한 조광권 양도 인가가 산업부에서 나오지 않아 계약 체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해저광물자원 개발법상 조광권자는 양도 시 산업부 장관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가 예상보다 길어지며 사업 일정 전반이 정체된 상태다.

늦어지는 우선협상자 선정 절차…국제 사례 비교해도 '이례적'

현재 상황은 국제 입찰 절차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통상 글로벌 입찰에서는 3~4주 내 우선협상자 확정이 이뤄지지만, 이번 사업은 연말이 다가오도록 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 공고 후 수개월간 기술검토와 자료 분석을 거친 기업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정부의 결론만 지연되는 현 상황은 해외 기업 입장에서 충분히 리스크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사업에 제동을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은 이미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BP 선정 소식이 언론을 통해 먼저 알려진 과정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고, 이후 산업부는 "입찰 참여자와의 협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사업 추진 여부 자체를 다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러한 기류는 감사원 감사와 맞물리며 정부 결정이 더 늦어지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됐던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은 11월 한국석유공사를 대상으로 실지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은 11월 27일부터 석유공사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전반에 대한 실지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여당 위원들을 중심으로 진상 조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김정관 장관은 석유공사의 관련 의혹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를 지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산업부가 감사 결과를 지켜본 뒤 조광권 인가 여부를 최종 판단하려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사업은 사실상 관망 국면에 들어간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BP뿐 아니라 잠재 투자자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심해 가스전 사업은 초기 투자금과 리스크가 큰 만큼 투명한 사업 구조와 정부의 예측 가능한 대응이 핵심이다. 인가 지연이 이어질 경우 참여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이탈하고, 결국 사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동해 심해 가스전은 국내 가스 생산량 확대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의미가 큰 프로젝트"라며 "추가 검증과 감사는 필요하겠지만, 결정 지연이 장기화되면 향후 사업성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석유공사 '경영 공백'도 리스크…신임 사장, 16일까지 공모 절차 진행 중

사업 리스크는 최근 석유공사의 경영 공백과도 맞물리고 있다. 석유공사는 전날(9일) 신임 사장 공모에 착수했다. 그동안 사장 부재 기간이 길어진 데다 후임 인선 절차가 다시 시작되면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추진 동력도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기관 안팎에서 나온다. 전임 김동섭 사장은 11월 24일 퇴임했고, 공사는 16일까지 사장 공모 절차를 진행한다.

새 사장이 내년 중 취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에서는 조광권 인가와 우선협상 마무리 등 핵심 의사결정이 새 리더십 체제에서 어떤 변화를 맞을지 주목하고 있다. 이 경우 사업 추진 일정이 추가 지연될 수 있어 정부와 공사의 신속한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