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산등성이에 선 '풍백'…국내 첫 공기업 'RE100 전력거래' 신호탄

75㎿ 육상풍력 단지 첫 공개…대구 군위서 15기 터빈 시운전
서부발전 참여한 풍백 단지 준공식…RE100 PPA 시대 열 분기점

서부발전이 참여한 풍백 육상풍력 단지의 5MW급 대형 터빈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제공=서부발전)

(대구=뉴스1) 나혜윤 기자 = 초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불던 3일 오후 자동차로 30분가량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자, 하얀 풍력 블레이드 15기가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고요한 산중을 가르는 묵직한 회전음이 군위의 바람이 전력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이날 공개된 75메가와트(㎿) 규모의 '풍백(風伯)' 육상풍력 단지는 내년 1분기 상업운전을 앞두고 첫 시운전에 나섰다. 한국서부발전이 참여한 이번 사업은, 국내 공기업 최초로 RE100(재생에너지 100%) 직접 전력거래계약(PPA)을 실현한 사례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집필된 삼국유사면에 위치한 풍백 풍력 발전단지는 우리나라 신화 속 바람의 신 풍백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이는 '바람의 고장에서 바람으로 미래 에너지의 새역사를 열어간다'라는 문화·역사적 상징이 담겨있다.

산등성이 따라 줄지은 15기 터빈…75㎿ 풍력단지 첫 공개

준공식이 열린 이날 군위 삼국유사면 일대는 초겨울 특유의 적막 속에서도 5㎿급 대형 터빈이 만들어 내는 낮은 진동음이 느껴졌다. 터빈 아래에서는 지역 주민과 협력사 직원, 관계기관 인사 60여 명이 모여 '바람의 마을'에 새로 들어선 발전단지의 탄생을 지켜봤다.

풍백 단지는 서부발전이 주주로 참여한 사업으로, 총사업비는 약 2176억 원이며 서부발전은 그중 78억 8500만 원을 출자했다. 2022년 7월부터 2025년 1월까지 42개월간 건설이 이뤄졌고, 운영기간은 이달부터 2045년 12월까지 20년으로 설정됐다. 서부발전은 지분투자와 운영·유지관리(O&M)기술자문 역할을 맡아 사업완성에 기여했다.

풍력단지의 지형적 특성에 대해 현장 실무자들은 군위의 조건이 쉬운 사업지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조찬욱 SK이터닉스 매니저는 "보통 평지나 간척지에 설치된 육상풍력을 떠올리지만 산지형 풍력은 토목비가 2배 이상, 전체 사업비도 평지 대비 약 30%가량 더 비싸다"고 설명했다.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군위가 선택된 이유는 바람 자원의 질이었다. 그는 "강원도가 가장 좋지만 이미 포화 상태라, 최근에는 경북권 개발을 많이 한다"며 "이 지역은 평균 풍속이 6m/s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나온다, 오늘은 9~10m/s 정도로 불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발전은 3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일대에 조성된 풍백 육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준공식을 개최했다.(사진제공=서부발전)
공기업 첫 RE100 직접 PPA…수출기업 재생에너지 조달 ‘전환점’

풍백 사업이 갖는 상징성은 단순한 준공을 넘어선다. 김동일 서부발전 풍력사업부 차장은 "이 사업은 원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제도로 진행되던 사업이었다. 준공 전에 RE100으로 전환할 기회가 생겨서 정부·에너지공단과 협의해 지난해부터 RE100 지원제도를 적용했다"며 "공기업이 개발단계부터 참여한 사업을 RE100 전력구매계약(PPA)으로 전환한 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즉 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은 앞으로 PPA를 통해 국내 수출기업에 직접 공급되며 RE100 이행을 지원하게 된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환경에서 요구받는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실제로 충족하게 되는 구조다.

풍력단지 조성 초기, 가장 큰 과제는 주민 수용성이었다. 신종팔 군위 금오2리 이장은 "처음엔 소음 때문에 걱정도 많았다. 과수 농사하다 보니 벌·매개충이 전자파에 영향을 받는다는 소문도 돌았다"면서 "그래서 제주도와 강원도 매봉산 풍력단지까지 직접 견학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풍력단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실제 시운전이 시작되자 주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신 이장은 "막상 가동하는 걸 보니 소음은 생각보다 적었고, 사과 결실에도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다"며 "지금은 '전망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다. 풍력단지가 보이는 쪽으로 땅을 사려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수용성을 확보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이 사업은 2014년부터 인허가를 시작했고 2020년에 주요 인허가가 끝났지만, 설계·금융·공사 준비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주민들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협의하면서 보상과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풍력단지는 20년 이상 운영을 목표로 한다. PPA 계약이 25년으로 잡혀 있고, 기기 보증도 20년까지 가능해 20년 이상의 운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풍백 단지는 시운전을 진행 중이며 이르면 2월쯤 전력공급 개시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정복 서부발전 사장은 "풍백 육상풍력 사업은 단순한 발전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시도"라며 "앞으로도 국내 기업의 RE100 이행을 적극 지원해 산업계의 지속가능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