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타결 뒤 산업별 명암…車 '숨통' 철강 '한숨' 반도체 '긴장'

車관세 인하로 수익성 회복 기대…철강은 고율관세 유지에 보완책 시급
반도체 '대만과 동등' 정부 설명에도 러트닉 발언에 재협상 우려 여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확대 오찬회담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산업계가 오랜 불확실성에서 벗어났지만, 업종별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관세 인하로 숨통이 트이며 반등의 기회를 맞았지만, 철강은 고율 관세가 유지돼 부담이 크다. 반도체 업계는 정부가 '대만과 동등한 대우'라고 설명했음에도 미국 측의 상반된 발언으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10월 29일 한미 간 관세 협상 타결이 이뤄지면서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대미 관세가 25%에서 15%로 인하된다.

그동안 25% 고율 관세가 장기화되면서 현대차·기아의 2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15.8%, 24.1% 줄었고, 관세로 인한 손실만 1조 60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인하로 관세 부담이 연간 3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관세 비용은 관세율 25%일 때 8조 4000억 원에 이르지만, 15%로 인하되면 5조 3000억 원으로 감소한다.

현대차그룹은 "정부의 헌신에 감사하며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으로 내실을 더욱 다지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관세 인하 효과는 완성차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그간 대미 수출 기지 역할을 해온 한국GM은 고율 관세 부담으로 철수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번 협상으로 재도약의 여지가 생겼다. 부품 관세도 15%로 인하되면서 부품업계 역시 한시름을 덜었다.

웃는 車업계와 달리 한숨 쉬는 철강…국내 공급 과잉·가격 하락 연쇄 충격

반면 철강업계는 이번 협상에서 제외되며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 안보를 이유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부터는 철강 관세를 두 배인 50%로 높였다. 이번 협상에서도 철강이 '안보 품목'으로 묶이면서 인하 대상에서 빠졌다.

미 상무부 국제무역청(IT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29억 달러(약 4조 1000억 원)로 전체 철강 수출의 9%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미 수출 감소가 국내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연쇄 충격이 발생하고 있다. 업계는 고율 관세가 변압기·가전·볼트 등 철강을 원자재로 쓰는 파생 산업에까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를 완화할 직접적인 정책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 수출지원 프로그램인 '수출바우처' 사업은 예산 소진으로 중단돼, 관세 부담이 커진 중소 철강·알루미늄 기업들이 지원 사각지대에 놓였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관련 업종 중소기업 133곳이 폐업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현재 융자 등의 지원책이 있지만, 바로 지원하는 수출바우처는 예산이 소진돼 내년 예산이 확정되면 조기 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산 공백과 관세 부담이 겹치면서, 중소 철강·알루미늄 기업의 경영난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 News1 윤일지 기자
재협상 우려 속 반도체는 '긴장'…대통령실 "팩트시트에 반도체 관세 내용 담겨"

반도체 업계는 '조건부 안도' 속 세부 사항을 따지고 있다. 관세 타결 소식에 일단 안도했지만, 완전한 불확실성의 해소는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대통령실은 이번 협상에서 "한국산 반도체가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한미 모두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반도체 관련 합의 내용을 명시했다고 밝혔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SNS에서 '반도체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난달 31일 언론 인터뷰에서 "러트닉 상무장관이 '반도체는 이번 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건 맞다"며 "그것은 이번 MOU에 담기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반도체 관세를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업계는 당장 관세율보다 향후 세부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반도체 패키지 재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주요 기업들도 공식 팩트시트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신중한 대응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철강은 구조적 보완책이 필요하며, 반도체는 언제든 재협상 압박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포스트 관세 시대'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한 통상 전문가는 "관세 타결로 단기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세부 이행 단계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나 품목별 조정이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