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키맨 설득, 재계는 트럼프 공략…韓 3500억불 설득전 막판 고비

정부협상단 "韓·美 논의 상당히 진전…쟁점 1~2개 남아"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 절충안 부상…APEC 전 협상안 마련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막판 협상을 벌이고 돌아온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2025.10.1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의 핵심 쟁점인 3500억 달러 규모의 대(對)미 투자패키지 내 직접 투자 비중 조율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다녀온 정부협상단이 협상 타결의 돌파구를 마련했을지 주목된다.

정부협상단의 방미 일정과 맞물려 국내 재계 총수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골프 회동'을 갖고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했다.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미 성과와 관련해 정부는 미국 측이 3500억 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가 한국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이해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착 상태였던 협상이 변곡점을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여전히 조율이 필요한 쟁점이 1~2개 남아 있어, 합의문 서명까지는 추가적인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오는 29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양국 정상의 회담 전까지 치열한 막판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각료급 4인방 총출동, 3일간의 방미협상 성과는?…"쟁점 1~2개 남아"

20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전날(19일) 미국과의 관세 후속 협의를 마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오후 비행기로 귀국했다. 이들은 귀국 직후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미 협의 성과를 보고하고, 남은 쟁점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 실장은 방미 성과에 대해 "이번 협의에서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며 "대한민국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상호 호혜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상당히 근접해 가고 있다. 대부분 쟁점에서 의견 일치를 봤지만, 1~2가지 쟁점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실장은 남은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서는 직접 투자 규모, '상업적 합리성'에 기반한 투자처 선정 방식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한미 간 입장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대미 투자금 3500억 달러의 운용 방식이다. 미국은 전액 현금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대규모 외화 유출과 외환시장 충격을 우려해 투자금액을 나눠 집행하는 분할 투자와 비현금성 자금 운용을 병행하는 방안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의 투자처 선정 관여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 수정안을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이번 방미 협상은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진행됐다. 김 실장과 김정관 산업장관은 미 측 관세 협상의 키(Key)맨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설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 청사에서 러트닉 장관과 2시간 넘게 회동한 데 이어 저녁 만찬까지 함께하며 입장 조율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김 실장은 "한미 양국이 매우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 속에서 협상에 임했다"며 "2시간을 훌쩍 넘는 공식 협의 외에 이어진 만찬 자리에서도 밀도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회동에서는 마스가(MASGA·조선업 협력),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펀드 조성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워싱턴에 머문 구윤철 부총리는 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만나 국제금융시장 안정 문제를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미국 측이 한국의 외환 부담 여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베선트 장관이 이 사안을 내부에 설명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앞서 각료급 4인방은 방미 기간 첫 일정으로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을 방문했다. OMB는 대통령 예산안을 편성하고 행정부 각 부처의 재정·규제·정책 집행을 통제·조정하는 핵심 예산 관리기관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의 법률·행정 검토 기능도 수행한다.

OMB 방문 배경을 두고는 대미 투자펀드와 관련한 한미 관세합의문의 행정 문구를 조율하고, 절차적 사항을 점검하는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 지원과 투자 유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이번 회동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초청으로 오는 18일(현지시간)에 삼성, SK, 현대차, LG, 한화 등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할 예정이다. 2025.10.16/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재계는 트럼프와 극비리 '골프 회동'…관세 후속 협의 측면 지원

정부협상단이 카운터파트인 미 행정부 각료들을 만나 '설득 작업'에 열중했다면, 국내 재계 총수들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을 통해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주요 그룹 총수들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골프 회동을 가졌다. 이번 회동은 극소수의 수행 인력만 동반한 채 극비리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초청으로 회동에 참석했다.

통상 4인 1조로 진행되는 골프 라운드에서 누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조에 편성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보통 18홀까지 진행되는 특성상 트럼프 대통령이 동반자들을 바꿔가며 되도록 여러 기업인과 얘기를 나눴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들에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요청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회동에 참석한 우리나라의 총수들이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전자, 조선 등의 각 분야를 이끄는 만큼, 미국과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 등을 요청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계 총수들은 현재 한국과 미국 정부 간 관세 협상에서 우리 정부를 측면 지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7월 말 1차 관세 협상 구두 합의 당시에도 이 회장, 정 회장, 김 부회장은 워싱턴DC를 방문해 한국 정부의 협상을 지원한 바 있다.

특히 김 부회장은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 구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APEC 전 최종 합의안 나올까… 최종 국면 등장한 '대두 수입 카드'

대통령실과 정부 내에서는 이번 협상을 경주 APEC 정상회의 계기에 정상 간 정치적 결단으로 매듭짓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된 오는 29일까지는 최종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한 막판 협상 작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협상 최종 국면에서 '미국산 대두(콩류) 수입 확대'가 협상의 새로운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16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워싱턴DC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미국산 대두 수입을 늘릴 것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협상 과정 중이라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하며 여지를 남겼다.

기존 관세 협상 논의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대두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최근 미국산 대두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갈등 재확산에 지난 5월 수입을 전면 중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중국은 미국의 대두 수입을 중단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으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이전 중국 수입량의 40~50%는 미국산이었다. 이에 미국이 대체 수입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한-미 관세협상 테이블에 대두 수입 확대가 오른 것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17일 관세협상과 관련 질문에 "농산물 관련해서 (1차 관세협상 타결) 이후에 새롭게 협상된 것은 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들은 건 대두 정도"라고, 실제 논의가 오가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선불 현금 5% 이내, 나머지는 대출·보증 형태로 충당'하는 절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