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점도표' 도입부터 '입시개혁'까지…이창용 4년, 한은의 틀을 깼다
전략적 모호함 탈피한 '직진 소통'…시장 예측 가능성 높였다
대입·돌봄 등 구조개혁 화두 제시…한은 '싱크탱크' 위상 격상
- 이철 기자, 이강 기자
(서울=뉴스1) 이철 이강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오는 20일 4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고물가·고환율·저성장 등 복합 위기 속에서 통화정책을 이끈 그는 '과감한 소통'과 '구조개혁 의제 제시'로 한은의 역할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직후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 국면에 직면한 이 총재는 유례없는 속도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취임 당시 연 1.50%였던 기준금리는 2023년 3.50%까지 올라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춘 긴축 기조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폐쇄적이었던 통화정책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를 도입하는 등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한 점은 대표적인 변화로 꼽힌다. 적극적인 메시지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며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다만 금리 인상·인하 시기를 둘러싼 '실기론'이 일부 제기된 바 있으며, 적극적인 소통 과정에서 시장 해석이 엇갈리며 혼선이 빚어진 사례도 있었다.
10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오는 20일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한은 총재직에서 물러난다.
이 총재의 임기 중 가장 독보적인 성과는 시장과의 소통 강화다.
그는 2022년 4월 취임 직후 이전 총재들이 중시한 '전략적 모호함'에서 탈피해 통화정책방향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서도 '직진 화법'을 선보였다.
같은 해 11월부터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들의 최종금리 전망을 알려주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석 달에 한 번 공개하는 점도표와 닮아 '한국식(K)-점도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같은 이 총재의 소통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키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총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올해 2월부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구두로 제시하던 '3개월 내 금리 전망'을 폐지하고, '6개월 후 금리 전망'으로 개편한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도 선보였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통화정책의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이 총재가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지난해 미국의 관세정책 발표 국면에서, 중앙은행 총재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메시지를 발표하며 신속하게 대응한 점도 눈길을 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공과를 따져보면 사실 과보다 공이 훨씬 많다고 본다"며 "특히 계엄 사태 당시 경제 전반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중앙은행 총재가 과감한 목소리를 낸 부분들은 꽤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재임 기간 한은 본연의 업무 외에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스스로 '시끄러운 한은'을 표방하면서 사회 구조개혁 의제를 적극 제기하는 등 싱크탱크의 역할을 키운 것도 이채로운 부분이다.
가장 화제가 됐던 화두는 대학 입시 제도였다. 한은은 대학 입시경쟁 과열을 완화하기 위해 상위권 대학이 성적순이 아닌,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 총재는 2024년 9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상위권 대학에서 서울 강남지역 고교 졸업생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며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게 할 과감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지적했다.
또 국내 돌봄서비스 인력난과 비용 증가를 완화하는 방안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도 이슈가 됐다.
아울러 기후 위기로 사과 등 신선식품 가격이 폭등하자, 재정 지원 대신 구조적 수입 개방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과는 다른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총재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2년 미 연준이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할 당시 이 총재가 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를 일시적으로 유지했던 점을 두고 시장 일각에서 비판이 나왔다. 또 2024년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낮추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 쪽으로 틀었지만, 그보다 더 일찍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강한 반박 논리를 펼친 바 있다.
뒤늦은 금리 인상 지적과 관련해 이 총재는 "미국보다 (금리를) 조금 올리면서 물가 상승률을 2%로 빨리 잡았으니, 효과적으로 잘 잡은 것"이라며 "그 당시 금리를 많이 올렸으면 자영업자는 더 힘들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망가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2024년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해서도 "7월에 내렸으면 9월에 가계부채가 10조 원 가까이 늘어나고 서울 부동산값이 올라갈 때 어떻게 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마지막 금통위를 마친 후 기자간담회에서도 "금리 결정과 관련해서는 금통위원들이 잘 해주셔서 자기 자랑 같지만, 후회하는 것은 없다"며 "금리 조기 인하에 실기했다는 말도 많았고, 지나서는 너무 금리를 안 올려서 환율이 올랐다고도 하니 그냥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이 총재 특유의 소통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의 규모와 시기, 심지어 방향 전환 여부까지 새로운 데이터(경제·금융 지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가 일부가 이를 '금리 인상 가능성 시사'로 해석하면서 금리·환율 시장이 출렁였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인하 기조 지속 기대가 강화되면 안 될 것 같아 12월 데이터를 보고 기조 전환도 말할 수 있다고 했다"며 "하지만 저는 (그 전환을) 동결로 생각했지, 인상으로 간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언론사가 전부 인상이라고 써서 이자율이 올라가 엄청 곤란을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ir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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