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센터 늘자 전력망 압박…산업계 "제때 전력공급 관건"

하이닉스 "재생에너지 확보 어렵고 비용 부담"
PPA·재생에너지 확대 주문…"입지·인허가부터 줄여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의 환경부 현판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변경되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한국에서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후보 사업이 약 50기가와트(GW) 규모로 거론되는 가운데, 현재 전력시장과 전력망으로는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제때 감당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센터가 동시에 전력을 끌어 쓰는 상황에서 청정전력 공급 속도와 전력시장 개편이 한국 AI 경쟁력의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부산 벡스코에서 16일 열린 'AI-에너지 넥서스' 포럼에서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접속 대기·검토 물량이 약 50GW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사용하는 새로운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기존 발전 중심 전력시장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 중인 실시간 전력 가격의 육지 확대와 데이터센터 냉각 부하를 활용한 수요 조절, 기업 전력구매계약(PPA) 확대를 제안했다. 그는 "시장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행정의 속도가 산업의 속도가 된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에는 청정하고 저렴하면서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저장장치 등을 묶은 공급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과 별개로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얼마나 배정할지도 쟁점으로 제기됐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반도체 공장과 달리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토지와 전력망, 전기를 투입한 만큼 한국 경제가 어떤 가치를 얻는지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 전기요금 체계도 전력의 희소성과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전력 제약은 이미 반도체 업계의 조달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조성봉 SK하이닉스(000660) ESG 부사장은 필요한 시점에 국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녹색프리미엄과 태양광·풍력 PPA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공급량과 비용 모두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고객사도 한국의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을 이해하며 "때로는 부담을 함께 나누려는 의사를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주요 AI 공급망으로 활용하는 글로벌 기업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스펜서 로 구글 아시아태평양 지역 지속가능성 총괄은 "AI 인프라 건설 속도가 전력망 탈탄소화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구글의 전력 소비는 2025년 37% 늘었지만, 운영 과정 배출량은 2% 줄었고 신규 청정에너지 12GW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구글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으로 꼽으며 값싼 청정전력 확보가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의 조건이 됐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발전설비와 전력망을 실제로 늘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옌스 뵈그스테드 오르펠트 RWE 아시아태평양 해상풍력 총괄 부사장은 해상풍력 사업이 구상부터 발전까지 7~12년 걸린다고 설명했다. AI와 반도체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지만, 청정전원은 인허가와 입지 갈등 때문에 같은 속도로 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입지와 이해관계를 먼저 조정하면 사업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금융도 전력 확보 여부를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보고 있다. 저스틴 우 HSBC 아시아·중동 지속가능성·기후변화 총괄은 "에너지 가용성이 데이터센터 사업성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청정전력 확보뿐 아니라 탄소배출과 물 사용, 지역사회와 자연에 미치는 영향도 금융사가 평가한다고 했다. 전력과 환경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데이터센터 투자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말레 포파나 GGGI 부사무총장은 재원만 있다고 청정전력 사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녹색 채권과 탄소시장도 "사업성이 확보된 프로젝트를 대신할 수 없다"며 예비타당성 검토와 토지·계통 확보, 수익구조 설계가 먼저라고 말했다. AI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정책 목표뿐 아니라 실제 투자 가능한 발전·전력망 사업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AI 확산에 필요한 전력과 비용을 사회가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도 변수다. 크리스 콜터 글로브스캔 CEO가 공개한 8월 조사에서는 33개 시장 3만 3000명 가운데 약 66%가 AI의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고 봤지만 약 90%는 AI 규제가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에서는 AI가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미칠 영향에 대한 평가가 중국과 인도 등 일부 아시아 국가보다 더 엇갈렸다고 설명했다. 전력망과 발전소를 빠르게 늘리는 문제뿐 아니라 비용과 환경 부담을 누가 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