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전기로, 전기를 수소로…제주 바다 위 '에너지 실험실' [르포]

5㎿급 계통연계 실해역서 파력·풍력·그린수소 연계 실증
스페인은 방파제로 전력 생산…발전단가 낮춰야 상용화

김길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친환경해양개발연구본부 책임이 14일 제주 한경면 용수리 파력발전 실해역 시험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제주=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지난 14일 제주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수면 위에 솟은 파력발전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구조물 안으로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힘을 전기로 바꾸는 설비다.

육지에서 보면 단순한 해상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주변 약 104만㎡ 해역은 파력발전부터 해상풍력, 그린수소까지 시험하는 거대한 해양에너지 실험실이다. 해안으로 파도 소리가 밀려올 때, 바다 위 구조물에서는 파도의 움직임을 전기로 바꾸는 실증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력은 다시 수전해 설비와 연결돼 수소 생산에 쓰인다.

김경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친환경해양개발연구본부 책임연구원(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은 바다 쪽으로 손을 뻗으며 시험장 구조를 설명했다. 제주 파력발전 실해역 시험장은 아시아 최초로 구축된 5메가와트(㎿)급 계통연계 해양에너지 실해역 시험장이다. 해상에는 250킬로와트(㎾)급 발전기 2기를 비롯해 수심 15~60m에 조성된 5개 정박지, 해저케이블과 수중커넥터가 갖춰졌다.

육상에는 원격모니터링실과 계통연계 설비가 있다. 파력·풍력발전 장치를 실제 바다에 설치한 뒤 발전 성능과 내구성, 설치·회수 기술 등을 검증할 수 있다.

파력발전은 파도가 가진 운동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바람이 날개를 직접 돌리는 풍력과 달리 파도의 상하·왕복 운동을 기계적 운동이나 공기 흐름으로 바꾼 뒤 발전기를 돌린다. 바다에서 장기간 작동해야 하는 만큼 발전 효율뿐 아니라 태풍과 높은 파도, 염분에 버티는 내구성과 유지보수 기술도 중요하다.

현재 시험장에서는 파력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력을 이용해 바닷물을 담수화하고 이를 다시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해양그린수소 기술도 시험하고 있다. 100㎾급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시스템을 연계했으며, 9~12월에는 저장·연료전지 설비까지 연결해 생산부터 저장·활용까지 실증할 계획이다.

2022년 4월 시작한 사업에는 258억 5000만 원이 투입됐으며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를 비롯한 12개 기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바다에서 생산한 전력 일부를 수소로 전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전력 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을 때 전기를 수소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연료전지 등을 통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육상에서 대규모 수소 생산·저장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용지 확보 문제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파력발전은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로, 세계 각국에서 실해역 실증과 대규모 발전단지 전환을 위한 시험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오크니의 유럽해양에너지센터(EMEC)는 2003년부터 빌리아 크루 해역에서 계통연계 파력발전 시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수심 최대 70m 해역에 해저케이블이 연결된 5개 시험 정박지를 두고 다양한 파력발전 기술을 실제 북대서양에서 검증한다.

기존 방파제에 발전 기능을 더하는 방식도 현실적인 선택지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 무트리쿠항은 항만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한 방파제 내부에 296㎾ 규모의 진동수주형(OWC) 파력발전 시설을 넣었다. 2011년부터 계통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으며 현재는 새로운 터빈과 제어 기술을 시험하는 시설로도 활용된다. 별도의 해상 구조물을 처음부터 건설하지 않고 방파제와 도로, 전력망 등 기존 인프라를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주에서도 향후 항만이나 방파제 신설·보강 과정에서 파력발전을 결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 다만 무트리쿠와 같은 방식이 제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도의 방향과 세기, 수심, 항만 안전, 구조물의 내구성 등을 함께 따져 발전량과 추가 건설비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파력발전이 실증에서 상용화로 넘어가기 위한 핵심 과제는 발전단가를 낮추는 것이다. 제주 실해역 시험장이 개별 발전장치의 성능 검증을 넘어 풍력과 수소, 에너지 저장·활용 기술까지 한 바다에서 시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도를 전기로 바꾸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 높은 해양에너지를 실제 에너지 시스템 안에 어떻게 집어넣을지를 시험하는 단계로 연구가 옮겨가고 있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