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만 합쳐선 기후정책 실패"…에스토니아 前 장관의 경고 [인터뷰]

알렌데르 환경위원장…"국민 설득 먼저, 정권 아닌 과학이 중심 돼야"
"SMR, 에너지 多소비 산업유치 카드로…선심성 기후공약 경계해야"

편집자주 ...인구 140만의 강소국가 에스토니아는 유럽 기후산업 전환의 실험실이다. 수소 산업과 소형모듈원전(SMR) 등 핵심 기술을 육성하며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 급변하는 기후·에너지 시장 속에서 에스토니아의 혁신 전략을 통해 한국의 탄소중립 해법을 모색한다.

에스토니아 정부 제2대 기후부 장관을 지낸 요코 알렌데르 국회 환경위원장은 17일(현지시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노르딕 포럼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5.9.17/뉴스1 ⓒ News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탈린=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부처만 합친다고 탄소중립이 달성되진 않는다. 국민이 설득되지 않으면 기후·에너지 정책은 무너진다."

에스토니아 정부 제2대 기후부 장관을 지낸 요코 알렌데르 국회 환경위원장은 17일(현지시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노르딕 포럼에서 이재명 정부가 구상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유럽연합(EU) 내 디지털·전환 강소국으로 꼽히는 에스토니아는 2023년 환경과 에너지를 통합해 기후부를 설립했다. 그러나 올해 3월부터는 장관직을 '에너지·환경 장관'과 '인프라 장관'으로 분리해 2명이 공동으로 이끄는 체제로 조정했다.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뒤늦게 '2인 장관 체제'를 채택했다는 설명이지만, 부처를 통합해 출범했을 때 각 분야 전문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게 뼈아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알렌데르 전 장관은 "환경과 산업을 하나로 묶지 않으면 기후 목표는 선언에 그칠 뿐"이라며 "기후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파성이 개입될 경우, 정책 지속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기후부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국민 설득과 체감형 정책 설명이 부족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 중심의 에너지 부처 개편과 편향된 정책이 초래한 실패 사례는 이미 유럽에서 확인됐다. 독일은 2021년 산업·에너지·기후를 통합한 '경제기후보호부'를 출범했지만, 에너지 비용 급등과 제조업 경쟁력 붕괴라는 부작용을 겪었다. 영국은 2008년 에너지·기후변화부(DECC)를 신설했으나 에너지 안보 강화와 가격 불확실성 등에 따라 2023년 에너지 안보·넷제로부(DESNZ)로 재편했다.

에스토니아 의회는 2022년 정치적 합의를 통해 2030년까지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재생전력 생산, 즉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방위 레이더 프로젝트 등 국가 안보 이슈로 풍력 등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현실적 제약이 커졌다. 정부와 시장에선 2031~2035년 사이에야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알렌데르 전 장관은 "시장 발전 속도와 비용, 안보를 고려하지 않은 목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핵심 전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상태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기반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끌게 된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기자간담회 등에서 "원전은 기저 전원"이라고 수차례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 시절 같은 탈원전 정책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알렌데르 전 장관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단순 발전 수단을 넘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국가 전략 카드로 평가했다. 그는 "SMR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기저 전원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집약적 산업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카드"라며 "정부와 의회는 투자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기업이 뛰어들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에스토니아 국민 3분의 2가량이 원전 도입을 찬성하며, SMR을 청정에너지 전환의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후정의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9.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한국은 기후변화로 인해 일부 지역은 가뭄에 시달리고, 다른 지역은 홍수 피해를 입는 등 강수 편차가 극심하다. 이에 대응하겠다며 윤석열 정부 시절 추진했던 기후대응댐 건설은 새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기조와 충돌하며 정치적 갈등 사안이 됐다.

알렌데르 전 장관은 "한국처럼 기후위기 최전선에 선 국가는 정권이 아니라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인들이 과학 기반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할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악용할지는 정치인의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을 경계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해법을 우선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