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첫 해석지침 두고 노사 반발…"책임 축소" vs "불확실성"
정부 첫 기준 제시에 노동계·경영계 모두 반발
사용자성·쟁의 범위 놓고 시행 전부터 논란 가열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처음으로 제시한 해석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이 정면으로 엇갈리고 있다. 노동계는 "불법파견 판단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원청 책임을 오히려 좁혔다"며 반발했고, 경영계는 "기준이 모호해 산업 현장의 혼란과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노동부는 26일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와 관련해 사용자성과 노동쟁의 범위를 구체화한 해석지침(안)을 마련하고, 내년 1월 15일까지 행정예고에 들어갔다. 법 시행을 앞두고 원·하청 교섭 범위와 쟁의 대상에 대한 해석 혼선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노사 모두 지침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노동계는 이번 해석지침이 개정 노조법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사용자 책임을 제한하고 노동쟁의의 실질적 범위를 축소할 우려가 적지 않다"며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을 찾아가는 데 활용되기보다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없애는 안내서로 활용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밝혔다.
노동계의 가장 큰 문제 제기는 사용자성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제시된 '구조적 통제' 개념이다. 한국노총은 "구조적 통제를 강조한 것은 실질적으로 원청이 하청에 대해 업무·작업 방식·인력 운용 전반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지휘·감독을 하는 경우에만 사용자성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불법파견 판단 기준인 '업무의 조직적 편입 및 통제 여부'를 보완적 징표로 삼겠다고 한 점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며 "자칫하면 개정법에 따라 원청과 교섭하려는 하청·간접고용 노동자에게까지 불법파견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불법파견 판단 요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면서, 간명한 사안조차 여러 단서를 달아 노란봉투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직접고용 책임이라는 법률효과가 발생하지만, 실질적 지배력은 도급관계를 전제로 단체교섭 등 사용자 책임만 인정하는 개념"이라며 "원청 사용자의 교섭거부 등 책임 회피를 줄이려면 판단이 최대한 간명하게 되도록 지침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지침은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할 명분 만을 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 지침으로 오히려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계 역시 해석지침이 산업 현장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동부가 확대된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대상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지만, 일부 예시와 표현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관련해 "'계약 미준수 시 도급·위수탁 계약 해지 가능 여부'를 구조적 통제의 예시로 들고 있는데, 일반적인 계약 불이행에 따른 계약 해지까지 사용자성 판단 요소로 오인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도급계약에서 통상적으로 존재하는 계약 관리 행위까지 사용자성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다.
노동안전 분야와 노동쟁의 대상 확대에 대해서도 경영계는 문제를 제기했다.
경총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법적 의무 이행과는 별개로, 안전보건체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예시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며 "원청의 법정 안전조치 의무 이행 자체가 곧바로 사용자성 인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합병·분할·양도·매각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 결과 정리해고나 배치전환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고용보장 요구가 가능하다고 했다"며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는 불분명한 개념으로서 사업경영상 결정 그 자체가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기준이 형해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번 해석지침의 출발점은 개정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사용자 개념의 변화다. 개정법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길이 열렸다.
해석지침은 이러한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로 정리했다. 원청이 근로시간, 인력운용, 작업방식 등을 상시적으로 결정하거나, 그로 인해 하청사용자가 근로조건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이 본질적·지속적으로 제한되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고용부는 납기·품질 요구, 거래조건 협상 등 일반적인 도급계약상의 관리 행위만으로는 구조적 통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독립된 설비를 갖추고 완제품이나 부품을 납품하는 통상적인 물량도급 관계의 경우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노동부는 행정예고 기간 동안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합리적인 의견은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석지침의 문구와 예시가 어떻게 보완·조정되느냐에 따라, 노란봉투법이 현장에서 원·하청 교섭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할지 아니면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될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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