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의 전쟁' 선포…노란봉투법·정년연장 갈등 여전[2025경제결산]⑤

산재 감축 최우선에도 사망사고 증가…현장 안착 과제
노란봉투법 통과·정년연장 논의 공전, 노사 갈등 지속

ⓒ News1 김영운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산업재해 감축'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격상하며 노동 정책 전반에 강도 높은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대통령이 직접 '산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직을 걸 것을 당부할 만큼 메시지는 선명했다. 중대재해를 개인의 과실이 아닌 구조적 시스템의 문제로 규정하고 감독 강화, 처벌 엄정화, 예방 중심 정책을 병행한 것은 과거와 뚜렷이 대비되는 정책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속도감 있는 접근이 노동권 보호와 고용구조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노동 현안이 동시에 분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법안 발의 10년 만에 원·하청 노조의 직접 교섭 길을 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이는 사용자 측의 반발과 함께 새로운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됐다. 아울러 정년연장 논의의 답보와 초심야 배송 금지 논쟁 등은 사회적 합의의 높은 벽을 실감케 했다.

산재 감축 최우선…첫해 사망사고 증가, 현장 안착은 과제

올해 노동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산재와의 전쟁'이었다. 정부는 2030년까지 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명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고위험 사업장을 중심으로 집중 감독을 실시하고, 반복 사고 사업장에는 강도 높은 조치를 적용했으며, 원·하청의 안전 책임을 명확히 했다. 또한 지방정부 참여 아래 지역 단위 산재 예방 체계도 새롭게 구축했다. 산재 감축을 단순한 노동 정책이 아닌 국가적 과제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성은 분명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시행 첫해의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1~9월 사업주 안전조치 불이행으로 사망한 근로자는 45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명 늘었다. 통계상 2022년 이후 이어지던 산재 감소 추세가 증가로 전환된 것이다. 현장에서는 감독 강화가 곧바로 안전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공정 압박 구조가 유지되는 한 사고 감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는 산재 사망을 대표적인 '후행 지표'로 보며 정책 효과가 현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내년에는 중소·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 안전 설비 지원과 예방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산재 사망 감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논란은 진행형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발의 10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으며, 내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 핵심은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원청의 사용자성 확대다. 기존 법상 근로계약 당사자만 사용자로 보던 기준을 넘어,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이나,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 시 합법 파업이 가능해지며 노동쟁위 범위도 확대됐다. 정부·여당은 장기간 표류해온 노동권 보호 과제를 마무리했다며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법 통과는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사용자 측은 불법 파업에 대한 책임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반발했고,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노동계 역시 시행령 단계에서 법 취지가 후퇴할 가능성을 경계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입법은 완료됐지만 제도 안착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청년TF 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출범식 및 제1차 회의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2025.12.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정년연장 연내 입법은 공전…사회적 대화 한계도 드러나

65세 정년연장 논의는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다.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속에서 정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상했지만, 정부가 기대했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성과 없이 공전을 거듭했다. 이를 위해 전담 논의 기구까지 출범했으나, 노사 간 입장 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년연장특별위원회 논의를 통해 단계적 정년연장 방안 세 가지를 제시했다. 1안은 2028~2036년까지 2년 간격으로 정년을 1년씩 연장하는 방식, 2안은 2029~2039년까지 61·62세는 3년에 1년, 63·64세는 2년에 1년씩 연장, 3안은 2029~2041년까지 3년간 1년씩 연장하는 방안이다.

노동계는 법적 정년 연장을 통한 고용 안정성을 요구한 반면, 경영계는 임금 부담과 인사 유연성을 이유로 계속고용 중심의 접근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 문제까지 얽히면서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초심야 배송 금지 논쟁…노동시간과 건강권 과제

0시~5시 '초심야 시간대' 배송 금지 논의도 노동 현안으로 부상했다. 장시간·야간노동이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축적돼 있으며,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보건기구(WHO)도 야간 노동자에 대한 정기 건강진단과 주간 근무 전환 등 보호 조치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당사자인 쿠팡노조는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최근 새벽배송 금지 반대 국민동의청원은 5만 명을 넘기며 사회적 논쟁이 확산됐다.

김영훈 장관은 이달 11일 대통령 주재 업무보고에서 "원칙적으로 야간노동을 전면 금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야간 노동자의 휴식 시간 보장과 연속 근무 일수 제한 등 건강권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내년 9월까지 야간 노동 실태조사를 거쳐 노동시간 관리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