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동생 종주야' 시로 전한 이산가족의 그리움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시인, 상봉장서 시 지어
北기자, 엄마 그리며 지은 시 南동생들에 읊기도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의 박춘자(77)씨가 북측의 언니 박봉렬(85)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2018.8.25/뉴스1 ⓒ News1 뉴스통신취재단

(금강산·서울=뉴스1) 김다혜 기자 공동취재단 = 25일로 막을 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선 오랜 세월 간직해 온 그리움과 상봉의 애틋함을 편지나 시로 표현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6·25전쟁 1·4 후퇴 때 가족들과 헤어졌던 북측 량차옥씨(82)는 24일 67년 만에 만난 남측의 다섯 자매 앞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썼던 시를 읊었다.

'우리집에 코스모스/ 담장 밑에 코스모스/ 아롱다롱 고운 꽃/ 우리엄마 가꾼 꽃/ 옥이꽃은 노란꽃/ 해해마다 칠십년/ 잊지않고 피는꽃/ 우리집에 코스모스/ 담장밑에 코스모스/ 빨간꽃은 피었는데/우리엄마 어데가고/너만홀로 피었느냐/너만보면 엄마생각/너만보면 고향생각'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넌 기자가 돼야겠다"는 글솜씨 칭찬을 들었던 차옥씨는 김일성문학대학을 졸업한 뒤 북측에서 과학기술통신사에서 40년간 기자로 일했단다.

남측 오세영씨(76)는 북측 이종사촌 라종주씨(72)를 만난 심경을 담아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 사촌동생 종주씨가 시를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시인이다. 외갓댁에서 자랐던 오씨는 8살 때 4살 종주씨를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함께 외갓댁에 머물던 이모와 종주씨는 6·25 전쟁통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오씨네 가족은 7~8년 전에야 이모가 평양에 살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북측 이모와 남측의 여러 형제는 세상을 떠났고 살아있는 오씨의 외삼촌과 이모는 거동이 불편해 상봉에 참여하지 못했다. 오씨는 "아들 세대에 와서 사촌들이 만나게 됐다"며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오씨는 사촌동생의 바람대로 이산가족에 대한 시를 지어 25일 개별상봉 때 종주씨에게 전달했다. 다음은 오세영 시인이 지은 시 전문.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의 량차옥(82)할머니가 남측 자매들과 찍은 즉선 사진을 보고 있다. 2018.8.25/뉴스1 ⓒ News1 뉴스통신취재단

사랑하는 동생 종주야

너는 4살

나는 8살

우리는 그때 외갓집 마당가에 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헤어졌지

네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에 어리던

그 푸른 하늘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데

네 볼우물에 감돌던 그 천진스런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었지

곧 전쟁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된 우리는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생사를 모른채 우리도

70년을 헤어져 살아야 했구나

예뻤던 내 여동생 종주야

이제 너는 일흔 둘

나는 일흔 하고도 여섯

봄들은 이미 늙었다만 아직도

네 눈빛에 어리던 푸른 하늘과

네 볼우물에 일던 그 귀여운 미소는

여전하구나

종주야. 내 사랑하는 여동생아,

이제 우리는 다시

헤어지지 말자

그때 그날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외가집 마당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는 그 끔찍한 민족의 시련을

겪어선 안 된다.

그때 너는 4살 나는 8살.

2018년 8월25일 금강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오세영

dh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