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거부에도 北 '중대제안' 수용 연일 촉구, 왜?

대남 비난 배제한 채 '南 호응' 주장만…張 숙청 후 '내부단속' 시간벌기 의도 또는 대남 도발 앞선 위장평화공세 분석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이 1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16일 북한이 발표한 '국방위 중대제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통일부는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북한이 연일 우리 정부에 자신들의 '중대 제안'에 대해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하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이번의 중대 제안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며 "우리는 이미 선언한 대로 실천적인 행동을 먼저 보여줄 것이며 남조선 당국도 마땅히 겨레의 지향과 시대의 요구에 부합되게 자기 할 바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6일 북한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중대 제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사실을 왜곡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거부 입장을 밝히자 하루 만에 다시 '선제적'으로 행동하겠다며 우리측의 호응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전날 우리 정부의 입장 발표 이후 대외 선전용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서도 "남조선 당국이 우리의 중대 제안에 하루라도 빨리 호응해 나서는 것이 민족과 통일을 위하고 자신들을 위한 유익한 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정부의 거부 입장 발표 직후에 나온 '우리민족끼리'의 글과 노동신문의 이날 주장에서는 우리측에 대한 비난이 보이지 않아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차원의 유화적인 제스처인 동시에, 자신들이 주장한 대로 중대 제안을 먼저 실천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처럼 북한이 비교적 차분한 논조로 중대 제안을 강조하고 나온 데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에 요구해 왔던 "진정성 있는 행동"을 감안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북한의 중대 제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는 대변인 논평에서 "남북 간 신뢰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중대 제안'은 비방중상 중단보다는 사실상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과 '핵 전쟁을 막기 위한 호상 조치'에 더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되는 만큼 아직 북한의 태도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특히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남북간 새로운 대화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첫 단추"로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꼽았음에도 북한이 이를 거부한 뒤 호응하지 않고 나오는 점을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결정적 이유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변인 역시 전날 "북한은 지금이라도 아무 조건없이 상봉을 실현시켜서 남북관계의 첫 단추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재차 촉구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대남 유화적 태도가 장성택의 숙청 이후 내부 단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남 관계에서 일정 기간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일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대외적으로는 남북관계의 개선 등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어필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고 말했다.

최근 이어진 내각 인사 교체 등 장성택 숙청 후 아직 진행 중에 있는 인적쇄신 등 내부 단속이 사실상 오는 3월 9일로 예정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이 최대한 외부와의 마찰을 피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최근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에도 "먼저 선의로 나온다면 우리도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며 일면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북한이 연초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도발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가림막 전술', '함정파기'를 하고 있다는 관측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이 중대 제안에 포함시킨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이나 '비방중상 중단' 등이 사실상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라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경우 한미 군 당국이 줄곧 '연례적 방어훈련'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온 만큼 이를 중단할 명분도,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이다.

북한은 그간 우리측의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반북 시위 등을 들어 우리가 자신들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 역시 우리측 민간 영역의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가 '중단'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같은 주장을 앞세우는 것이라면 이를 명분으로 삼아 우리측에 대한 비난을 강화하거나 나아가 기습적인 대남 도발을 감행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 같은 분석을 무게 있게 고려하며 북한의 향후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스위스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3박4일의 인도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스위스로 떠나기에 앞서 "북한의 대남 도발 등에 철저히 대비하는 철통 같은 안보태세의 만전을 기하라"고 국방부를 포함한 외교안보부처 장관들에게 지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지시와 관련, "그동안 북한이 이런 위장평화 공세를 펼친 후에 대남 군사적 도발을 자행하는 패턴을 보여온 것이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seojib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