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군정위 韓 수석대표 공석 이례적 장기화…美의 DMZ 권한 사수하기?

정전협정 위반 조사서 韓 입장 대변 수석대표 공백…유엔사가 임명 미뤄
DMZ 권한 강조한 유엔사…전작권 전환 후 '관리자' 역할 모색하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2022.7.19 ⓒ 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정전협정 체제를 관리하는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에서 한국군 장성이 맡는 유엔군사령부 측 수석대표가 이례적으로 장기 공석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유엔사의 관할 지역인 비무장지대(DMZ)에서 권한 확대를 모색하자, 유엔사가 한국군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해 수석대표 임명을 미루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28일 군에 따르면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육군 대장)은 한국군 인사 명령에 따라 지난 1월 부임한 문병삼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육군 소장)을 군정위의 유엔사 측 수석대표에 9달째 임명하지 않고 있다.

관례적으로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이 군정위의 유엔사 측 수석대표를 겸임해 왔다는 점에서 이는 이례적인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1991년 한국군 장성이 이 직위를 맡기 시작한 이후 이번처럼 장기 공석이 이어진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서는 70여년간 한반도 및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은 유엔사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후 DMZ에서의 권한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北·中 이탈로 군정위 와해 후 강해진 韓 수석대표 입지 신경 쓰이는 美
2018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제10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을 마친 당시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육군 소장·왼쪽)과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육군 중장이 악수하는 모습. 2018.10.26 ⓒ 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유엔사는 195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를 받는 통합군사령부에 유엔 회원국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탄생했다. 특히 유엔사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정전체제를 유지·관리하는 중요한 주체였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체제에서 북한·중국과 대응하는 위치에 있었다. 유엔사와 조선인민군사령부·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는 정전협정 이행을 협의하는 군정위, 정전협정 위반 사안을 조사하고 군정위에 보고하는 '공동감시소조'(JOT) 소속 인원을 절반씩 임명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정전협정 체제를 떠받치던 군정위가 1990년대 들어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면서 유엔군사령부 내부에서의 역학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1991년 군정위의 유엔사 측 수석대표로 한국군 장성이 임명되자 북한은 남한이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닌 만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중국과 함께 군정위를 탈퇴했다.

유엔사와 북한은 1998년 '정전 문제에 관한 유엔사-북한군 장성급 대화 절차' 협정을 체결하고 유엔사 소속 미군 장성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의 장성이 각각 수석대표를 맡는 방식으로 대화 채널을 복원했다.

이후 유엔사는 군정위를 정전협정 위반 행위를 조사하는 기구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의 탈퇴로 군정위 체제의 공동 조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된 만큼 군정위 산하에 한국군, 유엔사 회원국이 참여하는 특별조사팀 'SIT'(Special Investigation Team)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는 대북 공동 대응이라는 한미동맹을 감안했을 때 자연스럽게 군정위 한국 측 수석대표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DMZ 안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북한과 중국 측은 조사에 임하지 않는 만큼, 한국이 보다 강하게 우리 측 주장을 유엔사에 제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대북정책 실무를 담당했던 전직 군 관계자는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유엔사에서 남북 모두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군정위 수석대표인 한국군 장성이 '어필'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엔사 측에서 불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정위 비서처 중심으로 지휘계통 일원화?…'경비·정전집행여단' 창설에 주목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육군 대장). 2024.12.20 ⓒ 로이터=뉴스1

그 때문에 최근 유엔사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비여단' 창설 구상을 두고도 유엔사가 주도하는 정전협정 위반 조사 활동에서 한국 측의 입김을 줄이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유엔사는 △본부 참모부 △군정위 △군정위 비서처 △JSA경비대대 △중립국감독위원회 △한반도 유사시 일본 주둔 유엔 전력 투사를 지원하는 후방지휘소 등을 두고 있다.

여기서 미군 대령이 비서장을 맡는 군정위 비서처는 △군정위 활동 지원 △북한군과의 연락·협상 △DMZ 출입 및 MDL 통과 관리 △정전협정 위반 조사 등 정전체제 관리 주요 실무를 처리한다. 군정위가 460여 회 열릴 동안 군정위 비서장이 주관하는 비서장 회의가 총 500여 차례 열린 만큼 군정위 비서처는 정전협정 이행 및 감독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유엔사는 이러한 군정위 비서처를 JSA경비대대 등과 통합해 '여단'급으로 재편하고, 여단장에 군정위 비서장을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부대 개편은 지휘계통의 변화로도 직결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군정위 비서장→수석대표→유엔군사령관으로 이어지는 보고체계에서는 수석대표를 통해 한국군의 입장이 유엔사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지만 군정위 실무를 쥐고 있는 비서장 예하로 부대를 통합하고 비서장의 권한을 확대해 사령관에 '직보'할 수 있게 한다면, 한국 측 장성이 맡는 수석대표는 보고에서 배제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DMZ 내 '배타적 권한' 강조하는 유엔사…韓 상대 '견제' 행위 강화
2024년 경기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유엔군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독일의 유엔사 가입 기념식에서 독일 국기가 미국, 한국, 유엔기와 함께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 2024.8.2 ⓒ 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유엔사는 그간 여당이 추진하는 MDL 이남 DMZ에 대한 출입 승인 권한 일부를 한국 정부가 가져오는 내용의 'DMZ법' 입법에 반발하며 DMZ 관할권에 대한 유엔사의 '배타적 권한'을 강조해 왔다.

유엔사는 지난 1월엔 "현재 발의된 DMZ법은 정전협정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 적용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MDL 이남 DMZ에 대한 관할권이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기도 했다.

유엔사는 이후 DMZ 내에서 발생하는 남북 간 현안에 대해 한국 측의 입장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MDL 일대에서 진행 중인 '국경선 요새화' 작업에 대한 평가가 그 사례다.

국방부는 MDL 근접 이북 지역에서 진행 중인 북한군의 지뢰 매설 등 위협적 작업을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행위"라고 평가했지만, 유엔사는 "북한의 지뢰 매설은 MDL 북쪽에서의 방어 목적의 행위로 보인다"라며 "북한의 울타리 설치 및 도로 보수 등의 건설 활동은 MDL 북쪽에서 이뤄졌고, 중화기를 반입하지 않는 한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결이 180도 다른 입장을 보였다.

전직 군 관계자는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 작업은 과거엔 유엔사가 먼저 나서 중국과 북한에 군정위 차원의 공동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을 사안"이라며 "지금은 유엔사가 마치 북한과 한국 사이의 옵서버(참관인) 내지는 심판관이 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