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안보협의 돌파구 찾은 한미…대북 대화 난도는 높아져

한미 정상, 유엔서 '깜짝 회담'으로 투자·안보 등 현안 협의 재가동
北 포로 송환, '성과'지만 대북 대화 여건은 악화…APEC 전후 외교 주목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뉴욕 한 호텔에서 유엔(UN) 총회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9.23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외교를 계기로 한미가 대미 투자 협상에서 기대했던 진전을 이루고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 등 주요 안보 현안의 협상 재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붙잡혔던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두고 한·우크라이나 간 '엇박자'가 노출되고, 미중 정상의 담판에서 북한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진 않은 듯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여건 마련은 보다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27일 나온다.

큰 부담 안고 뉴욕행 비행기 오른 李…트럼프와 전격 회담 성사로 '돌파구' 마련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묵직한 외교적 숙제를 안고 뉴욕으로 향했다. 한미가 3500억 달러 수준의 대미 투자의 1차 프로젝트의 최종 타결을 앞두고 막판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의 연이은 방미도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특히 대미 투자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의 파병 요구는 물론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거의 진전 없이 지연된 한미 안보협의(핵잠 도입·원자력 협정 개정)와도 연계됐다는 점에서, 한국이 큰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뤄진 유엔 외교이자, 미국 방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및 담판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대통령이 뉴욕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청와대와 외교부조차 장담하지 못했던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전격 성사됐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 '전략 투자 협상'이 큰 진전을 이룬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는데, 이는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최종 합의'가 사실상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발표이기도 했다.

실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미 투자 1호 사업으로 약 223억 달러 규모의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선정됨에 따라 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한미 정상의 극적인 회담은 한미 간 지연된 현안이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대통령은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미국의 핵연료 지원 문제와 한국의 민수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권한 확대, 조선 협력,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등 산적한 현안을 모두 논의했다.

이번 회담은 이 대통령이 유엔으로 떠날 때만 하더라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정상회담은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의제가 교환돼야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측이 이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국의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구상을 확실하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정리하면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전후로 한미 간 협상에 부담을 줄 만한 '돌발 요구'를 제기하지 않은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는 정부의 입장에선 대미 투자를 계기로 한미 간 다른 현안의 논의를 재개할 수 있는 안정적 발판을 마련한 셈이기도 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22일 "원자력 협정 개정·핵잠 논의는 그간 외적 요인 때문에 진전이 없었는데, 가장 큰 요인인 투자 문제에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안보협의도) 다시 복원하자고 강조했다"라며 "곧 후속 협의를 워싱턴 D.C.에서 갖기로 했다. 가급적 빨리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작권 전환 문제도 많이 설명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에 관해 많이 이해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가 연내 안보협의와 11월에 전작권 전환 논의를 위해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일정을 빠르게 잡는다면 한미 간 소통의 폭이 넓어졌다는 확실한 방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한국행 성사…북한과의 대화 여건 마련엔 '악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을 성사시킨 것도 이번 유엔 외교를 계기로 확인된 성과다. 북러 밀착에 따라 지난 2024년 하반기에 러시아로 파병된 두 포로는 2025년 1월 우크라이나에 생포된 이후 한국행 의사를 밝혀왔고,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다각적 고위급 소통을 통해 당사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면서 국제법·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해결을 협의해 왔다.

다만 송환 사실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양국 간 소통의 한계도 드러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포로들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전격 공개했는데,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관련 사안은 양국이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며 아쉬움을 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포로들의 한국행을 조건으로 한국의 무기 지원을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한국행을 희망해 온 북한군 포로를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왔다는 점에서 이는 외교적 성과임엔 분명하지만, 이로 인해 남북 및 북미 대화 재개 여건은 보다 나빠졌다는 평가다. 북한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주권 무시'라는 이유로 문제를 삼으며 한국을 향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워싱턴 D.C.에서 국립문서기록관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떠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2026.9.26.ⓒ AFP=뉴스1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문제가 핵심 의제로 부각되지는 않은 듯하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도 논의했다는 것이 중국의 공식 발표 내용이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양국은 통상 갈등과 대만 문제, 인공지능(AI) 등 양국의 현안에 상대적으로 논의의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기대하는 북미 대화 재개의 동력을 당장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핵 없는 한반도'와 이를 위한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하며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와 미지근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가 더해지면서 북한과의 대화 환경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대북 외교와 관련한 새 분기점 마련은 오는 11월 중순에 중국 선전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관련해 어떤 수준의 협의를 진행했는지는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대북 제스처'의 수준으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요청했고, 중국이 다른 현안에서 미국의 양보를 전제로 이에 응했다면 11월을 전후로 대북 외교가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