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루비오 '워싱턴 담판'…李 '국익 우선·전쟁 불개입' 원칙 제시

손실 위험 없이 '대미투자 엄수'…군사작전 않고 '호르무즈 기여'
조현 외교, 절충안으로 美 설득…핵잠 등 안보 협의 재개도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현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9.18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앞두고 대미 투자에는 '국익', 호르무즈 해협 기여에는 '전쟁 불개입'이라는 두 가지 협상 원칙을 제시했다. 대미 투자 약속은 지키되 한국이 손실 위험을 떠안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에는 기여하되 미국 주도의 군사작전에는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날 밤 워싱턴DC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는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 두 원칙을 갖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대미 투자에서는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사업 조건을 관철하고, 호르무즈에서는 청해부대의 역할을 국민·상선 보호에 한정하면서도 이를 동맹 차원의 실질적인 기여로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다.

대미투자안도 다시 협의 중…속도보다 중요한 '상업적 합리성'

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3500억 달러(약 48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협상과 관련해 "거의 합의가 됐다고 하는데 제가 내용을 보니까, 동의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이 좀 있어서 다시 또 얘기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투자금 회수와 수익 배분, 손실이 발생하는 사업의 처리 등을 협상의 어려움으로 꼽으며 정상 간 합의문에 담은 '상업적 합리성'을 구체적인 사업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국익이 압박이나 강요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익이 훼손되지 않고 한미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협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국무부 장관과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출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9.17 ⓒ 뉴스1 이광호 기자

조 장관은 전날 출국길에 협상 지연 배경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있다기보다는 국내 절차적인 문제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절차 정비와 별개로 투자 조건을 둘러싼 추가 협의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는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첫 투자 사업으로 추진하고, 미국 내 원전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을 후속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 사업의 조건이 후속 투자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타결 시점 못지않게 내용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미국이 여러 사업의 손익을 통합하는 방식이 아닌 프로젝트별 정산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점도 변수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의 이익으로 다른 사업의 손실을 보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장관으로서는 미국에 투자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뜻을 확인하면서도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한다. 통상 당국의 세부 협상을 뒷받침하고 최종 합의에 필요한 정치적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이번 회담의 과제다.

전쟁 개입은 배제, 국민 보호는 열어둬…美 요구와 접점 찾을 여지

호르무즈 문제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기여의 한계선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전쟁에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며 "그런 형태의 파병이든 군 자산 파견이든 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미 중동 해역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활동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민과 상선의 안전을 위한 역할은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국회에서 호르무즈 사안을 한미관계 차원보다 항행과 에너지 수급선, 국민·상선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부로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는 동참하되, 이를 이란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문제와는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평화연구소에서 열린 직업 훈련 프로그램인 파운드리 스쿨 출범식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26.9.3 ⓒ 로이터=뉴스1

가능한 접점으로는 청해부대가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 아래 국민·상선 보호와 항행 안전에 집중하면서, 정보 공유 등 비전투 분야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조 장관은 이처럼 제한된 역할도 동맹국의 실질적인 기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에 납득시켜야 한다.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전쟁 불개입'이라는 한계선을 제시한 만큼 조 장관은 이를 미국에 설명하는 동시에, 그 범위 안에서도 동맹국의 실질적 기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회담의 성과도 즉각적인 파병 결정보다는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협력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데 달렸다는 평가다.

정체된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 후속 안보 협의가 다시 속도를 낼지도 관심이다.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JFS) 발표 이후 관련 협의는 올해 6월에야 처음 열렸고, 후속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대미 투자 협상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면 호르무즈 해협 기여 문제와 후속 안보 협의에서도 한국의 운신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뒤 뉴욕으로 이동해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미 정상 간 약식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성사될 경우 이번 외교장관회담에서 좁힌 접점을 두 정상이 조율하고, 정체된 후속 협의에 정치적 동력을 부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