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는 농축 길 열었는데…韓 원자력협의 일정은 8~9월 이후?
사우디, 조건부 농축 가능성 열어…美 비확산 기조 변화 주목
11월 美 중간선거 전 성과 목표…투자 이행·원전 협력 속도가 관건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라늄 농축 가능성을 열어둔 원자력 협력 협정을 맺으면서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논의할 2차 한미 안보협의는 구체적인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오는 8~9월 첫 대미투자 프로젝트 발표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외교가에서는 비슷한 시기나 그 이후에 2차 협의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27일 나온다.
한미는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첫 안보협의를 열고 핵추진잠수함 도입,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이르면 7월 워싱턴DC에서 2차 협의를 여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현재까지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올해 안에 원자력 협력과 핵잠 협상에서 가시적인 진전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어, 실제 협상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의가 늦어지는 배경으로는 미국이 이란 등 중동 현안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점, 3500억 달러(약 512조 원) 규모의 한국 대미투자 이행을 둘러싼 양국 간 시각차가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이 꼽힌다. 최근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이 투자 이행에 충분히 적극적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대미투자와 안보협의를 공식적으로 연계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가 진전되지 않으면 안보 현안도 속도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는 두 사안 사이에 공식적인 선후관계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대미투자 이행이 가시화될 경우 안보협의의 여건도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사우디 원자력협정은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새로운 근거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는 지난 22일 30년 기한의 원자력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앞으로 2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미국 기업이 사우디 현지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다만 협정이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 권한을 즉각 부여한 것은 아니다. 공동연구와 상업성 평가, 미국 의회 심사를 거쳐야 하고, 시설이 지어지더라도 사우디가 기술과 운영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블랙박스'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럼에도 농축 가능성 자체를 열어뒀다는 점에서 미국의 기존 비확산 기조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에너지부는 이번 협정이 미국 원전기업의 사우디 시장 진출과 일자리 창출, 공급망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확산 원칙을 앞세우던 미국의 원자력 대외정책에 자국 원전산업과 지정학적 이해가 한층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사우디 협정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 서명 이후 사우디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 즉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협정 이행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협정에 농축 물질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 실제로 어디까지 농축을 허용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혼선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미·사우디 협정은 이란 견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미국 원전기업의 중동 시장 진출 등 사우디가 맡을 전략적 역할을 전제로 한 '거래'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도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회 심사 과정을 지켜본 뒤 한미 협상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한국도 사우디 사례를 들어 같은 권한을 요구하기보다,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가 미국의 산업·안보 이익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중국 의존도를 낮춘 우방 중심의 핵연료 공급망 구축에 기여하고, 미국이 설계한 원자로를 한국 기업이 제작·시공해 제3국에 함께 진출하는 방안 등이 협상 카드로 거론된다.
최근 체결된 한미일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각서와 한미 기업 간 협력도 이런 산업적 기여를 보여줄 사례로 꼽힌다. 차세대 원자로 보급으로 핵연료 수요가 늘어나면, 한국이 원전 건설과 기자재 제작을 넘어 핵연료 공급망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협상 논리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미투자 이행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한국 원전 산업의 역량을 미국의 수출·공급망 전략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협상 카드로 구체화할 수 있을지가 향후 협상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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