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여파에 득 본 사우디…한국도 '원자력 권한 확대' 기회 요인
美, 사우디와 원자력 협정 체결…우라늄 농축 허용에 주목
전문가들 "한미 원자력 협력 개정 협상에 긍정적 환경 조성" 평가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며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권한 부여 가능성이 열렸다. 역시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장을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에선 미국과의 원자력 협력 개정 협상에서 운신의 폭이 커졌다는 평가가 23일 제기된다.
미-사우디 간 협정의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이번 협정 체결을 계기로 핵연료의 생산부터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폐기물 처리까지, 사우디의 핵연료 주기 활동 권한이 상당한 수준으로 확보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 협정 체결은 이란의 핵 고도화에 따른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중동에서의 핵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이 기존 비확산 원칙에서 사우디에 '전략적 예외'를 인정했다면 한국의 평화적 핵연료 주기 권한 확대에는 더욱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사우디는 22일(현지시간)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평화적 원자력 협력 협정(123협정)에 서명했다.
123협정은 미국의 원전 기술과 핵물질, 장비를 이전하기 위해 체결하는 협정으로, 협력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핵물질 이전 등에 대한 미국의 동의 절차를 규정한다. 한미의 원자력 협정 역시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것으로 '123협정'이라는 별칭을 쓰고 있다.
이번 협정에 따라 미국은 자국 기업의 사우디 원전시장 진출뿐 아니라 향후 공동 연구를 통해 사우디 내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농축 기술을 즉시 이전하거나 독자적인 농축 권한을 자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범위는 협정 전문 공개 이후 확인될 전망이다.
사우디는 그동안 자국 내 우라늄을 농축해 원전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해 왔다. 미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와 협정에서는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주지 않는 '골드 스탠다드'(포기 조항)를 적용했지만, 이번에는 한층 유연한 접근을 택했다는 관측이 외신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배경에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은 사우디를 중동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으며 이란을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중동 원전시장 진출도 차단하려는 전략적·산업적 이해를 함께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원자력 협정 내용이 외신의 보도대로일 경우 미국의 비확산 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간 원자력 협정 개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장애물을 하나 넘었다고 볼 수 있다"며 "미국 국무부와 에너지부에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는 기조가 오랫동안 유지돼 왔는데, 사우디에 이를 허용했다면 한국과의 협상 진전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자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는 국가에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골드 스탠다드'를 유지해 왔다. 일본만 거의 유일하게 피폭국이라는 특수성과 장기간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예외를 인정받아 미국과의 사전 협의를 거친 총량에 한해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원전 연료 공급 안정성과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공간 포화 등을 이유로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정상 간 합의를 계기로 원자력 협력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고, 지난 6월 초 첫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도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자국 법률과 한미 원자력 협정 범위 안에서 한국의 민수 목적의 농축·재처리 절차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미국과 사우디의 협정을 한국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양국의 협정은 미국의 대(對)이란 전략과 중동 질서 재편이라는 지정학적 배경 속에서 추진된 만큼 한국이 협상장에서 이를 '선례'처럼 제시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이란 사태로 인해 사우디가 '반사 이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한반도 상황에 적용하는 것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북한 핵문제의 고도화를 이유로 한국의 원자력 활용 권한 확대를 주장하면 자칫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원곤 교수는 "한미 간 논의되는 농축과 재처리 권한은 어디까지나 민수용 원자력 이용에 관한 것으로 군사적 핵 개발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설령 권한이 확대되더라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와 사찰을 받게 되는 만큼 이를 곧바로 핵무장과 연결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이번 논의는 군사적 핵 능력이 아니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연료 주기 자율성 확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북핵을 이유로 한국의 핵 잠재력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오히려 핵 도미노 논쟁을 불러올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북핵 대응은 한미 확장억제 체계를 통해 추진하고, 원자력 협상은 원전 산업 경쟁력과 핵연료 공급망 안정,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등 평화적 원자력 이용 확대라는 틀에서 접근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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