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통합안 발표 취소 파장…설득도 대안도 부족한 논쟁[한반도GPS]
정부, 사관학교 통합 '설득'보다는 '강행'…여론 지지 못 얻어
공론장 점령한 선배들…국방 이끌 미래 세대에 귀 기울여야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육군사관학교와 해군, 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는 지난 8일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사관학교 통합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2000여 명이 국회에 모여 정부의 통합안이 '군 정체성 파괴'라며 반대하는 궐기대회가 열린 것입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국군사관학교 창설(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기본계획을 발표하겠다고 결정했다가 발표 100분여 전에 이를 번복했습니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정책의 추동력을 높이기 위해 계획한 발표였으나 돌연 취소되면서 '혹 떼려다 혹 붙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취소 이유는 '긴급한 청와대 호출'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안 장관이 사관학교 통합 방안을 발표하려던 당일 비슷한 시각에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안 장관은 청와대로부터 '긴급하게' 점검회의 참석 요청을 받아 사관학교 통합 계획 발표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초 국방부 차관이 가기로 했던 청와대 회의에 안 장관이 급히 불려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정부 내부 소통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광주 군 공항이 선정된 것이 국방부 장관에 대한 '긴급 호출'의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광주 군 공항의 '이전 방안'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이에 대한 정부 내 논의 방안이 발표되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정부의 역점 사업인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가 가뜩이나 부정적 여론이 거센 사관학교 통합 문제에 덮이면 안 된다는 정무적 판단이 작동한 것 아니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관학교 통합 문제는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불거졌습니다. 이는 비상계엄의 '주역'으로 오명을 얻게 된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개편 필요성에 따라 제기된 방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년 넘도록 이 문제는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사관학교 통합 필요성과 구체적 계획에 대한 정부의 언어가 선명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관학교들을 하나로 합칠 것인지, 어디에 설치할지, 통합 이후 지금의 사관학교들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초급장교를 육성할 것인지, 그래서 우리 군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무릎을 탁 칠 만한' 청사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질문이 꼬리를 물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 중이라 답변이 제한된다"는 답만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안을 연구한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용역 보고서는 외부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관학교 통합 관련 공청회조차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논의는 진행되는데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정부가 주장하는 통합의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좀 어려운 구조인 셈입니다.
전장 환경이 우주부터 바다까지, 드론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변화하는 상황에서 육·해·공군이 유기적으로 함께 원활히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합동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사관학교 통합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일부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 경험이 없는 초급 장교들을 한 공간에서 육성한다고 그러한 합동성을 함양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합동성 제고를 위한 수업계획 정도는 발표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안 장관은 최근 사관학교 입학 성적 문제를 거론해 생도들의 '민심'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 4월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과거에는 서울 상위 그룹 대학에 갈 수 있는 인원이 (사관학교에) 왔는데, 몇 년 전부터는 과거보다 낮은 성적으로도 입학하는 인원이 꽤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근 지휘서신에서는 "사관학교 입학 성적은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이는 지금의 사관학교가 우수 인재들에게 자신의 비전과 잠재력을 떨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밝혔습니다.
안 장관의 말은 현재 생도들의 수준이 낮다는 말입니다. 장관이 직접 나서 생도들 중 우리 군의 미래에서 배제돼야 할 인원이 있다는 말을 하는 셈이자, 입학 성적만으로 앞으로의 모든 성장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사관학교를 통합하면 성적이 높은 인원들이 자동적으로 모일 것이라는 구상 자체가 논리성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처우 개선이 먼저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 장관이 3개 사관학교를 모두 다니며 생도와 교수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하지만 그 사실만 공개됐지 이들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이나 의견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지금 공론장에는 군을 떠난 선배들의 목소리만 가득합니다.
육·해·공사 각 총동창회는 연합해 "사관학교 통폐합과 육사 지방 이전은 국군의 역사와 전통, 정체성과 전문성, 국가안보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국가적 현안"이라며 사관학교 반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사관학교 반대 최전선에 선 육사 총동문회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육사가 전남 장성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기반해 육사 지방 이전 반대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육사가 있는 태릉 일대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방어한 역사적 공간이라며 이곳을 떠나면 호국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감정적 호소도 곁들였습니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후배들에 대한 우려, 자신의 삶을 바친 군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공론장에 나선 것은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목소리가 정말로 후배들을 위한 것인지, 자신들의 '과거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후배들을 앞세운 것인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안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돌아와 사관학교 통합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발표 시점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기본계획 발표에서 KIDA 연구용역 결과물을 공개하고 정책설명회 등 여론 수렴도 거칠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의 최종안을 결정할 때까지 미래 세대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이는 조금은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일지 지켜봐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국방을 이끌 미래 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은 어떤 모습인지, 이들이 안정적으로 공부하며 합동성과 전문성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교육체계는 무엇인지 조금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대안도, 설득도 없는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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