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항미원조 논란 왜 못 걸렀나…지도부 공백·관성적 업무로 '망신'

사업회 "왜곡된 역사 인식 파악해 대응" 해명했지만 논란 지속
회장·사무총장 공백으로 '필터링' 작동 못했다는 지적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동상. ⓒ 뉴스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사업회가 6·25전쟁(한국전쟁) 특별해설 및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중국이 한국전쟁을 묘사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는다)와 관련된 콘텐츠를 포함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취소하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역사 문제에 민감한 국내 정서를 고려할 때 전쟁의 교훈을 기리는 대표적인 기관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것은 기관장 부재와 이에 따라 느슨해진 업무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1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의 항미원조 주장과 관련해 논란이 된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기념사업회가 기획한 초등학생 대상 6·25전쟁 교육 해설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로, 한국과 중국 국적으로 보이는 두 소년의 머리 위에 각각 '6·25전쟁'과 '항미원조'라는 단어가 표기되는 등 한국과 중국이 한국전쟁을 규정하는 시각이 대등하게 묘사됐다. 북한의 침공을 받은 한국이 북한을 도운 중국의 전쟁 개입을 정당화하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자 사업회는 해당 포스터를 삭제했다.

또 다른 하나는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4박 5일 일정의 '해외 항일 유적지 탐방 연수' 프로그램이다. 초안에 중국의 항미원조기념관 방문 일정이 포함되면서 연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항미원조기념관은 중국이 6·25전쟁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전 목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원래 목적은 '중국의 왜곡된 주장 파악'…취지 못 살린 프로그램

당초 항미원조 관련 프로그램은 '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제대로 알기 위해 기획됐다는 것이 전쟁기념사업회의 설명이다.

사업회 관계자는 "중국은 조직적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항미원조기념관 등을 선전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라며 "중국이 어떤 부분에서 왜곡된 주장을 하는지 알아야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관점에서 접근하자는 게 원래 사업의 취지였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제 특별교육 프로그램에는 항미원조가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에 대한 비판적 기술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사업회 측은 자료에 '6·25전쟁'과 '항미원조'를 '서로 다른 해석'으로 기술하며 두 주장이 논쟁의 대상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항미원조기념관이 포함된 것은 '항일 유적지 탐방'이라는 연수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내부적으로 세운 사업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것인데, 사업회 내부에서 '필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아 논쟁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항미원조' 프로그램은 전 정부 기획?…내부 검증 시스템 강화가 더 중요

현재 전쟁기념사업회는 회장과 사무총장이 모두 공석이다. 백승주 전 회장이 지난 3월 경북도지사 예비후보 출마를 위해 사임하면서 당연직 이사(각 군 참모차장) 중 선임인 박기완 공군참모차장이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상황이다.

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현역 장성이 산하기관의 프로젝트의 적절성을 살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각이다. 실제로 이번 프로그램 추진 과정에서 박 차장의 별도 결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무총장 역시 지난 4월 임기 만료로 물러나면서 김낙진 W-아카데미 부장이 직무를 대리하고 있다. 사업회 내부에선 '항미원조' 관련 프로그램을 백 전 회장이 '국가관 정립과 안보 의식 고취'를 위해 설립한 'W-아카데미'에서 기획했는데, 전 정부 때 임명된 백 전 회장이 물러난 후부터 사업이 꼼꼼하게 진행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업무 추동력이 떨어지면서 부실하게 업무가 진행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이같은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회장 및 사무총장 인사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번 사안을 계기로 내부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전쟁기념사업회장은 국방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회장이 당연직으로 전쟁기념관장을 겸임하는 구조다. 국방부는 이번에 사업회에서 제기된 두 논란에 대한 감사 절차에 착수했으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도록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