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사, 영욕의 49년 종지부…신군부 요람에서 12·3 계엄 주범까지

박정희 시대 때 탄생…전두환 때 12·12 군사반란·신군부 요람으로
민간인 사찰·계엄문건 작성·여론 조작 논란으로 입방아…계엄으로 해체

국군방첩사령부의 해체가 공식 확정됐다. 지난 1977년 방첩사의 모태인 국군보안사령부가 창설된 이후 49년 만이다. (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2026.6.10 ⓒ 뉴스1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창설 2년 만에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의 요람으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국군방첩사령부가 12·3 비상계엄에 깊게 관여한 혐의로 개혁의 대상이 돼 끝내 해체된다. 방첩사는 지난 49년간 남북 분단 국면에서 군의 정보 및 방첩 기능에 큰 기여를 했지만, '권력의 칼'로 악용돼 많은 폐해를 낳았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국방부는 오는 7월 말 또는 8월 초를 목표로 방첩사의 방첩 및 사이버 보안 기능을 신생 기관인 '국군방첩본부'에, 군단급 이상 중앙보안감사 등 군내 보안 업무 기능을 '국방안보지원단'에 이관할 계획이다. 방첩사의 안보수사 기능은 담당 부서가 그대로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된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0일 '방첩사 해체 및 기능 개편안'을 발표하며 "과거 5·16군사정변, 12·12 쿠데타,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5·18 광주 학살 등 현대사의 어두운 순간마다 우리 군의 방첩 조직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면서 "보안사령부, 기무사령부, 방첩사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개혁의 역사가 말하는 점은 분명하다. 더 이상 구성원의 도덕성이나 일시적인 인적 쇄신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방첩사 해체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개편안은 단순히 조직 개편이나 기능 조정을 넘어 우리 군의 정보기관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도록 조직과 임무를 재구조화하는 '국민의 군대 건설'의 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신이 낳고 신군부가 키운 방첩사…'권력의 칼'로 정치 개입까지

방첩사의 모태인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가 한창이던 1977년 육·해·공군, 해병대에 각각 운영하던 보안부대를 국방부 직속으로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보안사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세와 권력을 자랑하던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보기관으로 떠올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군부 정권의 권력 유지의 막후 역할을 맡았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암살 사건 이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으로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면서 보다 권력의 중심에 섰고, 이를 계기로 12·12 군사반란과 신군부의 요람이 됐다.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5공화국의 초기 실세로 불린 일명 '쓰리 허'(3허) 중 허삼수, 허화평은 각각 보안사 인사처장과 비서실장을 맡고 있었다. 여기에 5공의 여당인 민주정의당 초대 사무총장을 맡은 권정달은 보안사 정보처장이었고, 5공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은 이학봉은 보안사 대공처장이었다.

5공화국 출범 이후 보안사는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해직을 비롯한 언론 탄압, 민정당 창당 작업, 야당 정치인 및 재야인사·학생운동 사찰(녹화사업)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신군부의 칼 역할을 했다.

문민정부 출범에도 계속된 민간인 사찰…계엄 문건 만들고 끝내 가담

1990년 정치·노동·종교 등 1300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찰 문건이 폭로되는 '윤석양 이병 사건'이 발생하며 보안사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보안사는 정치 개입 근절을 약속하며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간판을 바꿨지만 정보 수집 등 기능과 인력 및 구조에 있어 변화가 크지 않아 형식적 개편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권력에서 멀어지지 못한 기무사는 2009년 민간인 사찰 폭로와 이에 따른 국가 배상 판결, 2014년 세월호 유가족 동향 수집, 2017년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공작 사건 등으로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탄핵 심판이 기각될 경우 계엄령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검토한다는 내용의 '계엄 문건' 의혹이 확산하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기무사의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고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꿨다. 문 정부는 민간인 사찰 금지 등 개혁을 진행하면서 '해체에 준하는 개편'이라는 '해편'(解編)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안보지원사는 해편 조치로 육·해·공군에서 온 4200명의 소속 인원 전원을 원대 복귀시키고, 불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인원을 중심으로 부대를 재편성했다. 다만 이때도 기무사의 업무 기능이 축소됐을 뿐 본질적인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인 지난 2022년 안보지원사의 권한을 다시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는 안보지원사 해편 과정에서 방첩 역량이 크게 훼손됐다며 이름을 국군방첩사령부로 바꾸고 조직 개편을 통해 다시 권한을 크게 확대했다.

하지만 2024년 12·3 비상계엄 당시 윤 전 대통령과 당시 방첩사령관 여인형이 사전에 내란을 기획하고, 계엄 당시 정치인 등 주요 인물의 체포조 명단을 만들어 이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등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방첩사의 확대 개편이 '계엄 준비'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방첩사를 비롯한 정보기관의 축소 재편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사실상 방첩사의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의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는 안보 수사, 방첩 정보, 보안 감사 등 주요 기능을 분산하고 인사, 세평 수집 등 권력형 업무의 폐지를 권고했고, 이날 안 장관의 공식 발표로 방첩사의 49년 역사는 완전히 끝을 맞았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