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 당' 관계에서 '전략적 국가 관계'로…'관계의 근본 구조' 바꾼 북중
김정은, 시진핑 앞에서 "북중 관계, 국가 관계의 모범으로 만들겠다"
'혈맹' 컨셉의 '당 대 당' 관계에서 국제사회 기준의 '전략적 동반자'로
- 서재준 기자,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서재준 임여익 기자 = 북한과 중국이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전통적 '당 대 당' 관계를 '국가 관계'로 옮겨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 '남북 두 국가' 선언 이후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국가보다 '외교'를 하는 정상국가라는 정체성을 강화한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입지를 재설정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9일 제기된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전날인 8일 평양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관계' 설정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 주석은 방북에 앞서 노동신문 1면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북중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략적 의사소통과 협조를 강화하고,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계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공동으로 수호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기고문에는 '최고위급의 전략적 인도'나 '전략적 협조' 또는 '전략적 의사소통' 등 양측의 전략적 관계를 부각하는 표현이 여러 차례 사용됐다.
특히 시 주석은 "중국 측은 조선 측과 함께 중조(중북) 관계를 전략적 높이에서 틀어쥠으로써 중조 관계가 시대와 더불어 더욱 큰 발전을 이룩하도록 추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러 밀착 이후 비교적 소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 북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회복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력한 '전략적 파트너'로 상호 관계를 격상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총비서 역시 '전략'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시 주석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북중 우호 관계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인민의 선택이며 시대적 요구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변함없는 전략적 선택이자 확고한 전략적 의지"라며 "우리는 언제나처럼 북한과 중국의 관계 발전을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적인 전략적 과제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김 총비서는 아예 "북중 관계의 발전을 국가의 가장 중대한 제1전략사업으로 삼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북한과 중국이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북한과 중국은 그간 이념을 같이 하는 노동당과 공산당의 관계를 틀로 하는 '당 대 당' 관계를 양국 관계의 우선순위 방침으로 삼아 왔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으로 관계가 격상됐다기보다 관계 설정의 '컨셉'이 바뀐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과 중국은 '혈맹'이라는 기조 하에 보편적인 외교 관계와는 다소 다른 형식의 관계를 이어 왔다. 중국이 북한의 '형님 국가' 역할을 하면서 북한의 '반대급부' 지급 없이도 경제적 지원이나 군사적 보호를 해 온 것이 그 사례다. 실제 대부분의 사안에 있어 북한이 중국에게 받는 것이 많은 불균형한 관계가 장기간 지속돼 왔다.
그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외교적 용어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관계 격상'보다 '정상적 외교 관계'로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총비서가 시 주석과 대면한 자리에서 "북중 관계를 '국가 관계'의 모범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가'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도 그간의 불균형한 관계를 '거래'가 가능한, 상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관계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으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우방과 상호 거래가 가능한 관계에 있음을 과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중국은 북한을 '중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실리적 의도 아래 여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북한이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대등한 국가 간의 경험 교환으로 만들어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과 김 총비서는 상호 '핵심 이익'과 직결된 양국의 지지를 주고받았다.
시 주석은 한국과 미국에게 가장 민감한 존재인 북한의 핵 문제,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북중 관영매체의 보도에 '핵'이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군대 간 협력'이라는 언급을 통해 북한의 군사력이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핵능력 개발에 집중하는 북한의 군사력을 중국이 필요로 한다는 것은,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한다는 메시지로서의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표면적 조건으로 '핵보유국 인정'을 내세우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러한 제스처는 미국을 향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중국이 더 크다는 점을 부각하는 차원에서다.
김 총비서는 중국이 대만 문제에 있어 '원칙'으로 제기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는 향후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물리적 분쟁을 일으킬 경우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크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러한 양측의 핵심 이익 공유는 종합적으로 북한과 중국이 '대미 공동전선'을 꾸린 것이라는 평가도 가능한 대목으로 보인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자국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의도적인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 사실을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이 군사 분야에서 양측 간 교류를 강화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힌 것도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 기조에서 큰 변화가 생겼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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