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이 림팩 지휘봉 잡는 이유…美의 '전략적 유연성'의 그림자[한반도 GPS]
군사력 위상 높아졌지만…中 견제 전략서 韓 역할 확대 전망도 커져
한국, 단검·항모에 빗댄 주한미군사령관…병참기지화 구상도 밝혀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한국이 오는 6월 말 하와이에서 미국 주도로 열리는 세계 최대 해상 연합훈련 '림팩'(RIMPAC)의 지휘봉을 잡습니다. 1990년 훈련에 참가한 이래 최초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처음으로 연합 해군을 지휘하게 됐습니다.
한국 해군 제독은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을 맡고, 연합기동부대사령관(미 3함대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훈련을 총괄합니다. 30여 개 참가국 해군 전력이 한국 해군 제독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해군은 독자 기술로 개발한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북한 미사일을 잡는 최신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 등 정예 전력을 투입해 기량을 뽐낼 예정입니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림팩 훈련에서 우리 군이 지휘봉을 잡는 것은, 우리 손으로 군함 한 척도 만들지 못하던 시절을 지나 빠른 성장을 보인 해군의 높아진 위상을 방증합니다. 또 한국 해군의 작전 지휘 능력을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성과에 따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전환의 좋은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미국이 세계 안보 무대 전면에 한국을 세운 것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구상이 짙어짐에 따라 한국에 더 큰 책임을 부과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군사 역량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비례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일본과 함께 북한·중국·러시아를 견제할 만큼 한국의 역량이 커질수록 미국은 한반도에 쓰던 신경을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돌릴 여유를 얻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 전략은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부담 완화, 미국 이익 중심의 군 자산 운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등 동맹에게는 국방비 증액과 국방력 강화를 요구하며, 사실상 대중국 견제 강화가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의 유일한 목표라는 의중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지난해 12월 공개된 미국 국가 안보의 최상위 전략 문서 '국가안보전략'(NSS)에도 반영돼 있습니다.
미국은 NSS에 "미국이 아틀라스(Atlas·그리스 신화에서 어깨에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거인)처럼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방어의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라고 적시했습니다.
NSS는 "'제1도련선'을 따라 해양 안보 문제를 연계해 (중국의) 대만 점령 시도 등을 저지할 미국과 동맹의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제1도련선 어디에서든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축할 것이지만, 이는 미군 혼자 할 수 없다. 동맹국들이 집단 방위를 위해 훨씬 더 많이 지출하고 더 많은 것을 실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제1도련선은 일본 규슈·대만·필리핀·남중국해를 잇는 해상 방어선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과 태평양 진출을 막는 '봉쇄선'으로도 불립니다. 보고서는 어떤 경쟁국이든 남중국해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미국의 이익에 광범위한 손해를 끼칠 것이라며 남중국해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이번 NSS에는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지난달 말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역사적인 군사력 증강과 이 지역 및 그 너머까지 확장되는 군사적 활동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안정적인 균형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말은, 사실 적확하진 않습니다. 미국은 제1도련선을 지키는 것이 미국의 핵심 이익이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국방비를 증액하고 국방 역량을 강화해 미군이 담당했던 안보 사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길 원합니다. 이를 통해 동맹이 미국의 이익 보장에 더 많은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 미국의 구상입니다.
달리 말하면 미국이 한국 해군에게 림팩 지휘봉을 쥐여준 것은 전작권 조기 전환의 명분을 안겨주는 동시에 미국의 국익을 위해 군사적 부담을 더 많이 분담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발현한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림팩은 미국이 우리 군의 해상 지휘 능력을 평가하는 자리이자, 동북아에서 한국에 더 많은 역할을 맡길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도 보입니다.
대중 견제 강화 전략에 한국을 보다 깊숙이 개입시키려는 미국의 의지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에서도 드러납니다.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달 미 육군대학 팟캐스트에 나와 "한국은 아시아 중심에 꽂힌 (중국을 향한) 단검처럼 보인다"면서 "일본은 남중국해를 넘어서려는 중국의 야망을 막는 일종의 방패"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한국을 대중 견제의 '최전선 국가'로 보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는 지난해 11월엔 주한미군사령부 홈페이지에 주한미군 교육용인 '뒤집어진' 동아시아 지도를 공개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해당 지도는 남북이 뒤집힌 동북아 지도로, 경기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와 동북아 주요 도시들의 직선거리가 표기돼 있습니다.
브런슨 사령관은 "관점을 바꾸면 (한반도가) 접근성·도달성·영향력을 갖춘 전략적 중심 위치로 보인다"면서 뒤집힌 동북아 지도를 보면 한국과 일본, 필리핀이 하나로 연결된 네트워크, '전략적 삼각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주한미군이 더 이상 북한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주둔하는 '붙박이 군대'가 아닌,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대만과 중국의 유사시에 신속대응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브런슨 사령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근 '권역 지속지원 허브'(Regional Sustainment Hub·RSH)라는 개념을 발표하며 한국을 미 전력의 MRO(유지·보수·운영) 등을 담당하는 군수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도 밝혔습니다. 한국에게 대중 견제의 첨병 역할을 넘어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까지 맡기겠다는 의도로도 보입니다. 자칫 한국이 유사시 분쟁에 직접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우리 군이 림팩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의 연합해군사령관으로서 위상을 자랑하고 미 전력의 MRO를 맡아 일자리와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도 좋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변국의 시선도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혈맹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역할 수 없지만, 이웃 국가인 중국과의 관계 관리도 병행해야만 하는 것이 한국의 숙명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맹의 이익이 꼭 우리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엄혹한 외교의 이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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