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넘게 기다린 한미 핵잠 회의인데…美의 '로키' 행보 이유는?

한미, 첫 실무협의 앞두고 '메시지' 발신 극도로 자제
후커, 첫날 회의 종료 후 "실무협의 개시 기뻐"…신중하지만 우호적 메시지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차관이 2일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 안보 분야 후속 협의체 첫 회의를 개최했다.(외교부 제공)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한미가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안보 분야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2일 서울에서 시작했다. 약 7개월 만에 비로소 개시되는 첫 협의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번 협의에 임하는 한미의 분위기에는 약간의 온도 차이도 감지된다.

양국의 실무협상단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을 각각 수석대표로 '킥오프(발족) 회의'를 개최했다. 오후부터는 양국 국가안보실 주도의 분야별 세부 협의가 진행되며, 3일에도 오전·오후 각각 한 차례씩 회의를 하는 밀도 있는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특히 이날은 양측 대표단이 오찬과 만찬도 하는 등 '하루 종일' 만난다. 난제를 두고 마주하는 양측 대표단의 오·만찬 일정이 사전에 공개된 것은 실무협의에 임하는 한미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음을 방증한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일정은 공개됐지만 '메시지'는 아직…협의에 속도 내는 정부와 신중한 美

이번 실무협의는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핵잠)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장 등의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안보 분야 협의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올해 1월에 첫 만남을 가지기로 하는 등 속도를 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 지연과 쿠팡 사태 등을 문제 삼으며 안보 분야와 관련된 후속 절차가 반년 넘게 미뤄져 왔다.

그러다 지난달 14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자력 협력과 핵잠 문제는 잘 진척되고 있다"라며 미국의 11월 중간선거(상·하원 선거) 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전환됐다.

이어 5월 19일엔 박윤주 차관이 미국 워싱턴D.C를 직접 방문해 후커 차관을 만나 '6월 실무협의 개시'에 합의하고, 26일엔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장보고 N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핵잠 도입 기본계획을 밝히는 등 정부가 관련 사안에 상당한 속도를 내는 듯한 모습이 이어졌다.

정부는 이러한 '속도전'에 미국과의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국과 사전 소통이 있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무부, 에너지부, 전쟁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열린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 안보 분야 후속 협의체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6.6.2 ⓒ 뉴스1 김명섭 기자
美, '협상력 높이기' 행보일 수도…첫 협의 결과는 3일에 공개

하지만 미국 측 대표단은 전날 인천공항에서부터 이날 첫 협의를 위해 외교부에 도착하면서도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취재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취재에 응하지 않는 방식은 미국 측이 이번 사안에 한국에 비해 더 '신중하게' 임하고 싶다는 의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미국 역시 한국의 핵잠 도입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도입에 따른 대중 견제 강화와 중동사태로 인해 한반도 안보에 신경을 더 쓰기 쉽지 않은 점은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임은 분명하나, 이를 한국에 쉽게 건네주듯 협의에 임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미국 측이 우리 정부의 '속도전'에 불만이 있었다면 이를 제어하기 위해 언론에 한마디를 했을 것"이라며 "미국 측의 현재 분위기는 한국에 불만이 있지도 않지만, 한국의 속도에 적극 호응하기도 어렵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라고 전했다.

후커 차관은 첫날 협의가 종료된 뒤인 이날 오후에서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X'에 "지난해 가을 양국 정상이 제시한 원자력 협력 구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한미 실무협의가 출범해 기쁘다"며 "70년이 넘는 한미동맹의 역사와 성과를 바탕으로 협력을 더욱 심화하고 현대화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여전히 신중하지만, 비교적 우호적 메시지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측은 후커 차관 외에 대표단의 구성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구성원에 포함된 인사의 급에 따라 핵잠 및 원자력 협력 문제에 대한 미국의 기조가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측 대표단의) 구체적인 숫자를 공유받지는 못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에너지부, 전쟁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구성된다고 들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늦어도 올해 초에는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던 양국 간 핵잠 실무 협의가 기약 없이 지연되면서 일각에서는 '한미관계 이상설'까지 제기돼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성사된 미국 대표단의 방한은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정상 간 합의된 사항을 본격적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양국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상대국이 존재하는 외교 일정인 만큼 모든 사안을 다 공개하기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 "또한 이번 회의가 끝이 아니라 앞으로 양측이 계속해서 추가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천천히 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중간중간 결과를 대외적으로 설명을 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한미는 이번 실무협의 결과를 3일 보도자료 형식으로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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