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NPT 회의에서도 노골적 북한 편들기…힘 잃은 NPT 체제

러, 합의문 도출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북핵 관련 문구 완전 삭제' 주장
의장, "각국 의견 차이 크다" 합의문 제시 없이 회의 종료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5년 만에 열린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합의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북핵 관련 문구를 모두 삭제할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군사적 밀착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노골적으로 비호한 데 따른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외교가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22일까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11차 NPT 평가회의에서 합의문 채택이 불발됐다. NPT 평가회의는 5년에 한 번씩 4주간 열리는데, 합의문 채택에 실패한 건 2015년과 2022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특히 북핵 관련 언급은 2~3차 수정본을 거치며 점차 줄다가 4차 수정본에서 전부 빠졌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NPT 전체회의는 한 나라의 반대도 없어야 합의가 이뤄지는 '컨센서스' 절차를 따르는데, 러시아는 합의문에 북핵 관련 문안이 들어가면 컨센서스를 파기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으로 파악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북한이 병력을 파병하고 무기를 지원하는 등 군사적 협력에 응한 것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외교적 행보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NPT 평가회의의 합의문 논의 과정에서 북핵 관련 문안을 두고 이견이 불거진 적은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 측의 노골적인 반대는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며 두 차례나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한 유일한 국가로, 북핵 문제만큼은 모든 NPT 당사국들이 유사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2015년과 2022년 당시 최종 합의문 도출이 불발됐을 때도 '북핵을 규탄한다'는 취지의 문안은 합의문에 들어갔다.

이같은 러시아 측의 태도에 정부 대표단은 일관되게 북핵 관련 문안이 포함돼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비핵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불가, 대화와 협상 독려 등 세 가지 문구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4차 수정안에 북핵 관련 내용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정부 대표단은 북핵 문안을 다시 포함해 줄 것을 의장 측에 요구하고, 미국과 일본 등 여러 우방국과의 협의를 지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북한의 또 다른 우방국인 중국은 북핵 관련 문구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상진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폐막식에서 "북한이 NPT 체제에서 결코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이 문제를 협상과 외교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명시됐어야 했다"며 "북한 문제에 대한 단 한 줄의 간단한 메시지조차 결과 문서에 담아내지 못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합의문 채택이 최종 불발된 배경에는 북핵 문구 포함 여부 외에도 당사국들 간의 여러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의장을 맡은 도 훙 비엣 주유엔 베트남 대사는 각국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아예 합의문을 제시도 하지 않은 채 회의를 끝냈다.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로써 NPT 평가회의는 3회 연속 최종 합의문 채택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NPT 체제의 권위와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NPT 당사국들간의 외교적 역학관계도 점차 첨예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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