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단계'라던 나무호 피격 조사 길어진다…'정무적 판단'에 시간 걸려

'공격 주체' 지목 쉽지 않은 역학관계가 영향?
美-이란 '종전 협상' 타결되면 나무호 사건 주목도도 낮아질 가능성 커

지난 4일 미상 비행체의 타격으로 피해를 입은 나무호 외부의 모습.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5.11 ⓒ 뉴스1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이 'HMM 나무'호의 피격 사건 조사가 '최종 단계'라고 밝힌 지 약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부의 최종 조사 결과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군 관련 기관의 분석이 상당 부분 마무리된 상황에서도 결론 도출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이번 사안이 단순한 원인 규명을 넘어 이란과의 외교 관계와 호르무즈 해협 내 우리 선박 및 국민의 안전 문제, 미·이란의 협상 구도까지 얽힌 '정무적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26일 나온다.

나무호는 지난 4일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상에서 정박 중 '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아 선체 일부가 파손됐다. 정부는 사고 직후 합동조사단을 파견해 사고 현장에서 비행체의 잔해를 확보했고, 지난 15일 이를 국내로 반입해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기관에서 분석해 왔다. 잔해가 어떤 무기체계에서 나왔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조사의 핵심으로, 무기체계를 특정하게 된다면 나무호 공격 주체를 특정하거나 '공격 후보군'을 크게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모든 잔해물을 면밀히 검사하고 있으며 (조사가) 거의 최종 단계"라고 밝혔지만, 일주일이 지난 이날까지도 조사 결과 발표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이 사안이 정부 합동대응반과 외교부 주도로 다뤄지고 있다면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누가 쐈고, 누가 책임지나…책임 묻지 못할 '공격 주체' 등장 가능성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군사적 사안으로 규정하기보다 외교적 사안으로 다루는 듯하다. 사건 발생 후 줄곧 외교부가 사안을 주도해 정부 차원의 메시지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4일 "이란 이외에 다른 어떤 주체에 의한 공격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나무호에 대한 공격이 이란에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란은 관련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가짜 깃발'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이번 사건이 이란을 모함하기 위한 어떤 세력의 공작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짜 깃발 공작'은 특정 세력이 자신의 소속을 숨기고 공격이나 테러를 감행한 뒤, 이를 적대국이나 제3자가 공격한 것처럼 조작하는 기만전술을 의미한다. 이는 사건의 실체 파악 자체를 흐리기 위한 전형적인 외교적 수사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정부는 공격 주체가 '이란이냐 아니냐'보다 '이란의 책임을 어디까지 공식화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과 소통하는 이란의 외교 당국이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혁명수비대(IRGC)의 소행이거나, 이란이 운을 띄운 '가짜 깃발 공격'으로 확인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이란 당국에 책임을 묻는 조치를 단행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란 종전 협상·호르무즈 정세 변화도 변수…발표 한 줄이 중동 외교 좌우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도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는 여전히 25척의 한국 선박과 150여 명의 한국 선원이 체류하고 있어, 이란을 직접적으로 공격 주체로 지목할 경우 이들의 안전 문제에 직접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 외교부 내의 분위기다.

그 때문에 정부가 일단 양국의 종전 협상이 '좋은 방향'으로 풀려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정세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길 기다리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우리 국적선과 선원들의 안전 문제가 먼저 해결된 뒤에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이 순서라는 취지다.

상황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할 경우, 미국이 다시 한국에게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파병을 요구하는 등 대(對)이란 공세에 한국의 참여 압박을 높일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종합하면 한국이 이란을 나무호의 공격 주체로 특정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우리 국민 안전 확보 문제나 종전 후 원유 공급 등 이란과의 외교적 공간은 좁아지게 되고, 반대로 공격 주체가 끝내 모호해질 경우 해외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 문제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조사 결과와 발표가 한국의 중동 외교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yoonge@news1.kr